2009년 이후 4배 이상 증가한 영아 유기 건 수. 이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오가고 있다. 베이비박스와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두고 유기 증가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동안, 지금도 영아들은 이틀에 한 명꼴로 버려지고 있다.

 

베이비박스‘영아 유기 조장 vs 영아 생명 보호’

  일각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이비박스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자로, 독일 등 유럽 10여 개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온도조절장치 등이 설치돼 있어 유기된 영아가 발견되기 전까지 아이의 생명을 보호한다. 국내에는 지난 2009년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최초로 설치됐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교회 대문에 버려진 신생아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뻔했다”며 “유기된 영아들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연구하던 끝에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유기 아동은 버려진 지역의 자치 단체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지난 4년간 유기된 아동 612명 중 49.5%(303명)가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를 통해 유기됐다. 결국 지난 7월 서울시 관악구청은 베이비박스 철거 요청 공문을 보냈다. 베이비박스 2호가 설치된 경기도 군포시에서도 지자체와 베이비박스 단체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광역시 사상구의 한 교회 단체의 경우 지난해 베이비박스 설치를 추진하다가 지자체의 저지로 무산되기도 했다.

  미혼모가정협회 측에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영아 유기에 대한 부모들의 죄책감을 줄여 영아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혼모가정협회 목경화 대표는 “법적으로 범죄인 영아 유기 행각을 벌인 무책임한 부모들을 오히려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베이비박스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도, 베이비박스와 영아 유기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도 없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관한 법률 자체가 없어 불법 시설이라고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인증된 아동보호소도 아니기 때문에 복지 예산 투입도 어렵다. 올해 베이비박스를 통해 유기된 아동(9월 18일 기준)만 해도 109명이지만 이들 모두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입양특례법‘, 입양아동의 권리vs 미혼부모의 권리’

  2012년 8월부터 시행된 입양특례법 개정안 때문에 영아 유기가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입양특례법은 입양 아동의 권익과 복지 증진을 위해 개정됐다. 기존에 신고제였던 입양 절차가 법원의 허가제로 바뀌었으며, 친생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해 입양 아동이 원할 경우 친생부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미혼부모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해 아동 유기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줄 잇고 있다. 미혼부모,성폭력 피해자 등이 아동을 타 가정으로 입양 보내려고 할 때에도 예외 없이 아동을 가족관계로 등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전영란 전도사는“아동이 입양되지 못할 경우 기록이 삭제되지 않기 때문에, 성폭행 피해자들은 평생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아동의 흔적을 보아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베이비박스를 찾는 성폭행 피해자들도 존재했다.

  법안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제도와 맞물려 모순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2항에 따르면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母)가 하게 돼 있어, 미혼부의 경우 출생신고가 불가한 상황이다. 한국입양가족협의회 김홍중 회장은“유기 아동 중 80%가 입양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기록 삭제가 되지 않는다”며 “남자는 책임이 없고 여성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단체들 대책 촉구에도 정치권은 묵묵부답

  유기 아동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입양특례법과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월과 7월, 문제 해결을 위해 입양특례법과 가족관계법 일부를 재개정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회에 서 계류되고 있다. 때문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전영란 전도사는“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데 미동이 없다”며 “논란이 많다보니 국회의원들도 몸을 사리는지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유기 아동 증가 원인에 대해 첨예한 의견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그러나 관련 단체들은 복지 시스템 개선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법률 개선과 더불어 미혼부모에 대한 전반적인 복지 서비스 및 사회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혼모가정협회 목경화 대표는“미혼부모가 자녀를 키우

는 것보다 입양, 위탁하는 경우에 더 많은 지원금이 투입된다”며 “아이들이 버려져야 생존할 수 있는 현재의 법적 구조부터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인식 전환에 대한 요구도 잇따랐다.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미혼부모와 청소년 부모에 대한 사회 분위기를 개선해서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이곳에 남기고 간 편지들이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는 사람 중 대부분은 미혼부모, 청소년 부모이며, 다수의 편지에서 입양특례법 때문에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발견되고 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