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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렌즈는 당신을 향해 있다임재천 다큐멘터리 사진가
  • 이혜주 기자
  • 승인 2014.09.15 19:12
  • 호수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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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천 다큐멘터리 사진가
누구든 먼지 쌓인 앨범 속에 앳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기 마련이다. 포토샵 기술이 화려하게 사용된 사진도 아니고, 남다른 구도로 찍힌 사진도 아니다. 그렇다고 색이 강렬하지도 않다. 하지만 꺼내어 볼 때마다 새롭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오는 것은 왜일까. 임재천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이러한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말한다.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네 삶과 삶의 터전. 그는 이러한 것들을 기록한다. 임재천 사진가를 만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삶과 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렌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다큐멘터리는 분야가 여러 가지에요. 동·식물 다큐를 찍는 사람도 있고 종군 사진, 시사 사안을 찍는 사람도 있죠. 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살고 있는 공간 등 변해가고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에요.
 
△사진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어렸을 때는 카메라가 보편화되지도 않았을텐데
아주 우연하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고향이 경북 의성인데 외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깡촌이었죠. 열네 살이 되던 해 어느 날은 역전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살아있는 외국인들이 지나가는 거예요. 그들 중 한 사람이 가방에서 책을 한권 꺼내서 주더라고요. 책에는 내가 상상도 못했던 세상이 사진으로 나타나 있었어요. 문득 나도 나이 마흔이 될 즈음 그런 책에 사진을 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외국인에게 받았던 책은 바로 <내셔널 지오그래피>라는 다큐멘터리 잡지였어요. 만 나이로 사십 세가 되는 해였던 지난 2007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피> 한글판에 두 차례 정도 사진을 실었어요. 어린 나와 한 약속을 지킨 거죠.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특히 인문·지리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종군기자가 꿈이었는데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어요. 지난 1995년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사진부 기자를 찾는 전화가 오더라고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카메라 장비를 챙겨 달려갔죠. 눈에 띄는 게 인도 끝에 깔려있는 신발들이었어요. 처음에는 백화점이니까 새 신발이 깔려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다 낡았어요. 알고 보니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압력에 신발들이 밖으로 튕겨 나왔던 거예요. 그 순간 사진을 단 한 컷도 찍을 수 없겠더라고요. 그 길로 종군기자의 꿈을 버렸어요.
 
당시 삼풍백화점이라는 공간이 그곳에서 죽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서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일순간 사라졌잖아요. 그때부터 내 곁에 항상 있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을 찍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보니까 인문·지리 분야 사진을 찍게 된 거에요. 서울 사는 사람들이 남산이나 6.3빌딩 올라가는 일이 별로 없고, 부산 사는 사람들은 해운대나 광안리에 잘 안 가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낯설게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빤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애정을 갖게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촬영을 하는 거죠.
 
그의 대표 사진집 <한국의 재발견>은 출판사 ‘뿌리깊은 나무’의 대표 고 한창기 선생이 1980년대 중반의 한국을 집대성한 <한국의 발견>에서 빌려온 제목이다. 그는 <한국의 발견>과 같은 책이 다시 집필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2000년부터 2010년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각 지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최근에는 50 더하기 1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진가로서의 홀로서기를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속살을 담다
 
△<한국의 재발견>을 발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서 <한국의 발견>과 같은 책이 다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업이나 관공서에 이러한 것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콧방귀도 안 뀌는 거예요. 내가 유명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곳곳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10년 동안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으로‘ 한국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로 사진집을 내고, 그것으로 지명도를 얻어 다시 시도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2010년이 됐지만 누구도 사진집을 내주지 않더라고요(웃음)
 
심지어 2010년부터 3년 동안 진행했던 국립생태원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서는 재정난에 시달렸어요. 그런데 우연히 시작한 페이스북에서 맺게 된 ‘페친’ 중 사진 전문 출판사인 눈빛 출판사 대표가 있었어요. 그분께서 사진집을 내자고 제안해주신 거예요. 처음에는 출판사 문고판을 제안했는데 사진이 마음에 드셨던지, 정식 사진집을 출간하자고 하시더라고요. 페이스북에 사진집 발간에 대한 소식을 공개하자 반응이 좋아 예약판매까지 시도를 했죠. 정통 사진집을 최초로 예약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고 1쇄로 찍었던 천 권이 모두 팔리는 기록을 세웠어요. 출판사와 내가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 독자들이 지금의 <한국의 재발견>을 만든 셈이죠.
 
△그렇다면 <한국의 재발견>만으로는 우리나라 지역인 문학서를 재편찬하겠다는 본래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닌가
사진집을 발간하면서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2010년부터 생각해왔던 50 더하기 1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어요. 사진가로 살아가기 가장 힘든 이유가 수입이 비정기적이라는 것인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죠. 내 사진을 좋아하거나 내 사진을 소장하고 싶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모금을 진행했어요. 한 사람당 100만원씩 총 50명이 돈을 모아서 1,500만원은 생계비용으로 쓰고 2,500만원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이죠. 1년 동안 작업한 뒤에는 사진을 그 50명에게 전송해서 한 장씩을 고르게 만드는 거예요. 비록 사진은 내가 찍었지만 50개의 사유가 생겨나게끔. 그리고 그 사람들이 고른 사진으로 갤러리에서 2주간 전시를 하고 그분들에게 그 사진을 증정할 계획이에요. 그분들은 저렴한 가격에 사진을 사고, 나는 그 분들에게서 사진 작업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죠.
 
이미 첫 번째 지역을 제주도로 선정해 현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총 8년으로 계획되어 있어요. 2022년쯤 지역별로 대표 인문학자들을 만나고 섭외해 두번째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엮을 거예요.
 
△<한국의 재발견>은 △도시 △삶 △사람 △전통문화 △자연으로 사진이 분류돼 있다. 하지만 카테고리가 달라도 거의 모든 사진에 사람이 등장한다. 의도한 바인가
카테고리를 나눈 것은 너무 느슨한 사진집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에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땅의 현재 모습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죠. 사람이 없는 풍경은 빈 풍경이에요. 제 사진에 사람이 없는 경우는 정말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2시간이 넘게 기다렸는데 사람이 단 한명도 지나가지 않아서 정말 어찌할 수 없이 그냥 빈 풍경을 찍은 것이랄까요. 가급적이면 사람이 그 풍경에 위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어요. 사람이 없는 풍경은 임재천의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불완전하죠.
 
△부산 지역에서 작업할 당시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나
저한테 있어서 부산은 용호동, 용호농장이에요. 지난 2003년 어떤 분이 DSLR 커뮤니티에‘ 오륙도’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올렸더라고요. 오륙도 앞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한 그 공간 자체가 상당히 독특해 보였어요. 언젠가 여길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얼마 후 업무 때문에 부산에 내려갔다가 용호동에 발을 디딘 그날은 하늘이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정말 파랬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광선이 있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에 휩싸였죠. 교회당 옥상에 올라 호흡을 가다듬고 한 컷을 찍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사진의 색깔, 사진의 가치가 규정이 됐어요. 나에게는 상당한 중요한 한 컷이었죠. 분명히 사라질 그 공간을 사진으로 남겨둬서 시대의 증인이 된 거에요. 앞으로도 이러한 공간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는 시대의 증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 이후에도 몇 번 그곳을 찾았어요. 디뎠던 교회당은 흙무더기가 되어버렸고 공룡 같은 아파트가 들어섰지요. 올해 다시 부산을 찾았는데 당시 찍었던 사진과 같은 곳이 한군데도 없더군요. 하루에 필름을 세 롤(백 컷) 이상 잘 안 쓰는데 부산은 예외적으로 하루에 열 롤 이상을 쓸 수 있을 만큼 찍을 게 많았어요. 그런데 올해 방문했을 땐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정말 부산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과 토양이 모두 사라지겠다는 우려가 생기더라고요.
 
△과거와 다르게 변해버린 공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슬프죠. 우리 삶에서 가장 큰 슬픈 순간 중 하나가 한동안 머물렀다 떠나온 곳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더 이상 그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에요. 그 순간 나는 나이가 든 것이고 세상은 바뀐 거예요. 그런데 변하고 바뀌는 것이 어찌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라 했을 때, 변하지 말아야 될 보편적인 가치는 분명히 있어요. 최근 사람들은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고 낡은 것은 없애야 될 구태의연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우리의 모습은 바뀐다면 어느 한 부분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어야 된단 말이에요. 거기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사진이 얼마만큼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남자
 
△카메라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오래된 매체다. 영상의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 영상에 비해 사진만이 갖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설과 시에 비유할 수 있어요. 소설은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상당히 긴 호흡을 필요로 해요. 시는 그렇지 않죠. 아주 짧은 시구로 몇 문장만으로도 핵을 보여줄 수 있어요.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마음을 총체적으로 단 한 컷의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은 동영상이 해내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긴 호흡으로 절대 포착할 수 없는 절체절명, 찰나의 순간에서 빚어지는 순간의 재현력이 사진이 가지고 있는 변별성이죠.
 
△아직도 필름 카메라 사용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사실 디지털카메라는 필름카메라가 찍어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진보된 매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디지털사진은 이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허상이거든요. 간단히 말해서 사진을 찍어서 컴퓨터 하드에 보관을 했는데 갑자기 하드가 불량이 생기거나 물리적으로 깨져서 날아가는 것은 순식간이에요. 그런데 필름은 허상이 아니잖아요. 필름은 셔터막이 열리고 닫힐 때 그 찰나의 빛이 필름 베이스에 상을 아로새기거든요.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파일 박스가 손상이 된다고 해서 필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죠. 아직까지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처럼 당시의 광선 상태나 촬영자의 심리 상태 등을 구체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이 외국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OECD 국가 중에 다큐멘터리사진잡지가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아무리 열심히 작업을 한들 발표할 기회가 없고,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동기 부여나 재정적 지원 등이 전무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국내 작업에 국한될 수밖에 없죠. 그 사람들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기반이 약하다보니 심도 깊은 작업을 할 수 없는 거예요.
 
다큐멘터리와 포토저널리즘을 헷갈려하는 사진가가 일부 있긴 해요. 예를 들면 다큐멘터리 사진가 중에서도 세월호 사태에 대한 단식투쟁이 진행될 때 신문사 기자들과 다를 바 없이 현장에 가서 단순 작업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나는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적 이슈를 담론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에 첨착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진가 앞에서 감히(?) 사진을 찍을 생각에 긴장한 기자에게 떨지 말라며 웃어주는 임재천 사진가. 그래도 직업은 숨길 수 없다는 듯 “감도를 올려야 될 것 같아요”, “셔터 스피드가 내려가 있는데”라며 끝없이 조언한다. 그러다 문득 그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좋은 장면을 놓치면 안타깝지 않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못 찍었기 때문에 내 가슴속에 오롯하게 남아있다”라는 현명한 대답을 남긴다. 그의 대답을 빌리자면, 우리가 미처 소중함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사진이 사람들 가슴에 오롯이 남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그는 바로 당신의 옆에서 바쁘게 셔터를 누르고 있다.

이혜주 기자  how4157@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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