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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낳지 못하는 위기
  • 김상욱(물리교육) 교수
  • 승인 2014.09.16 14:46
  • 호수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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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524일 영국 펠링 탄광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갱도에서 폭발이 일어나 광부 92명이 사망한 것이다. 시체 대부분이 불에 타거나 팔다리가 절단되었으며 일부는 총알처럼 갱도 밖으로 튕겨 나왔다. 지하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여 시체를 수습하는 데에만 6주가 넘게 걸렸다. 석탄층에서 방출되는 가스가 전등의 불꽃으로 점화되어 일어난 폭발이었다. 19세기 초 석탄은 산업혁명의 혈액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사회적 비극인 동시에 국가적 위기였다. 이런 재난에도 불구하고 광산을 폐쇄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자본주의와 결합한 광()산업은 착취의 막장을 향해 달리는 기관차와 같았다. 펠링 탄광 폭발사고로 죽은 92명 가운데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20여 명에 달했고, 최연소 사망자는 불과 8세였다.

영국정부는 급히 안전위원회를 구성하고 광업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다. 새로운 환기방식이나 안전등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나왔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듬해 12월 같은 광산에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 22명이 또 사망한다. 다급해진 위원회는 모든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험프리 데이비에게도 도움을 요청한다. 데이비는 웃음기체(아산화질소)와 전기화학의 업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과학자였다. 데이비는 직접 탄광으로 가서 조사를 시작한다. 데이비가 때로 100미터가 넘는 갱도를 직접 내려가 조사하는 열정을 보이며 일의 해결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자, 외부인에게 적대적인 탄광 사람들도 차츰 그에게 감화된다.

데이비는 세밀한 화학분석 끝에 불 증기가 특이한 연소특성을 갖는 탄소-수소 화합물임을 알아낸다. 오늘날 우리가 메탄이라 부른 것으로 탄소 하나에 4개의 수소가 결합한 분자다. 불 증기는 공기의 혼합 비율이 임계값 이상일 때만 폭발했다. 조건을 잘 맞추면 불꽃이 있어도 폭발하지 않고 빛을 내며 안전하게 탈 수 있었다. 데이비는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안전등의 개발이 관건임을 깨닫는다. 불꽃과 불 증기를 적절히 분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데이비는 결국 해법을 찾아낸다. 촘촘한 철망으로 불꽃을 감싸면 외부에 불 증기가 있어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열전도도가 큰 철이 열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빛은 철망 사이로 빠져나오니 전등으로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데이비의 안전등을 도입한 이후 탄광의 폭발사고는 거의 사라진다.

펠링의 폭발사고에 대해 영국사회는 여러가지로 반응했을 것이다. 물론 책임공방이 있었을 것이고 책임자 처벌에 대한 논의도 거세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위기를 해결한 것은 과학적 방법이었다. 과학적 방법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단계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정량적 데이터를 정확히 수집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이때 선입견을 버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단계는 다시 실험과 관찰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펠링의 폭발사고 못지않은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 세월호 참사 역시 과학적인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과학적 해결책을 통해서만 일단락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광산업자들이 사고 장소를 은폐하거나 데이비의 조사를 방해했다면 안전등의 발명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가설을 세울 때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갈릴레오는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인슈타인은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데이터를 은폐하고, 성역을 만들고, 합리적 의심에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는 사회에서 과학은 질식한다. 그러면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국정원 부정선거와 세월호 참사의 처리 과정을 보면 우리가 겪는 위기의 본질이 분명해진다.

펠링 탄광의 위기는 데이비라는 영웅을 낳았다. 왜 우리의 위기는 분열, 불신, 피해자,내부 고발자만을 낳는 걸까?

김상욱(물리교육)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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