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골목 사이로 들어선 합판으로 만든 집들. 연탄이나 나무로 때는 난로와 커다란 물탱크. 도시빈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무허가 주택촌의 흔한 풍경이다. 국공유지나 사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사는 이런 마을은 전국 각지에 분포돼 있다. 지난 2007년에 실시된 주거복지부산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부산에 형성된 무허가 거주촌은 150여 곳에 이른다. 재개발과 철거에 밀려 사라지고, 새로운 무허가촌 형성이 반복되면서 지금은 그 수를 파악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들은 주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수도와 전기, 가스도 이들에게는 보장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사는 ‘무허가 주택’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사실상 없다.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과 우암동 사이에 위치한 철탑마을. 슬레이트 지붕이 바람에 날아갈까봐 타이어를 잔뜩 올려 놓았다. 슬레이트 지붕은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철거

그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그들은 왜 남의 땅을 점거한 채 떠나지 않는 것일까? 주거복지부산연대 손이헌 공동대표는 “생존의 문제”라고 표현했다. 그는 “일단 이사를 할 주거지도 없지만, 거처를 구하게 되더라도 살기가 어렵다”며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주거지 인근에 새 일자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도시빈민층에게 주거지 이전은 곧 생존의 위협이라는 것이다.
  토지 무단점유에 대한 변상금 또한 그들이 무허가촌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국공유지를 점유하고 있는 무허가촌은 ‘국유재산법’과 ‘지방재정법’에 근거해 토지의 무단점유에 대한 변상금을 부과하고 있고, 사유지에 위치한 무허가촌의 경우에도 주인에게 사용료를 내야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체납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시민단체들은 이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반빈곤센터 윤웅태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집’은 단순히 ‘살 곳’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며 “빈곤층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철거민을 양산하는 개발이 아니라 주거권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주거권’이라는 용어는 실정법에서 찾을 수 없는 단어다. 지난 2003년 주택법에 최저주거기준이 도입되면서 주거 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여전히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의무 조항이 아니다. 1999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지급되고 있는 주거 급여도 월세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무허가촌의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도 기대할 수 없다. 보증금은커녕 매달 부과되는 관리비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무허가촌 주민들의 문제는 주민들 스스로도 해결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가 돼버렸다.

주택협동조합의 꿈, 지자체 의지 중요해
  주민들은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서울특별시 남태령전원마을의 씨알주택협동조합과 부산광역시 대연우암공동체의 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큰 그림은 같다. 무허가촌 거주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토지를 공동으로 매입한 다음, 주민 스스로가 후원단체들과 함께 자조주택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씨알주택협동조합 권기현 이사는 “자가 소유와 임대의 중간적인 형태로 보면 된다”며 “주택의 소유권은 협동조합에 있고 주민 개개인은 영구적 입주권을 갖는다”고 전했다. 주택이 건설된 이후에는 협동조합이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며 자활 능력을 키울 계획이다. 조합원 스스로가 정부나 외부 단체의 지원없이도 생활할 수 있도록 자체 생산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조 주택은 마을 공동체 형성과 사회의 재능기부를 통해 도시빈민촌의 보육과 교육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성공 사례가 나왔다.

   
 일러스트 신희연

  하지만 자조 주택이 현실화되기 위해 뛰어넘어야할 벽이 많다. 주택 건설비 자체는 조합원의 출자금과 후원 단체들의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으나, 주택을 건설할 부지 마련에 거금이 들기 때문이다. 전원마을은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를 통해 국공유지 사용권 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공기업 및 지자체 부채가 많아 우선권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연우암공동체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언제 철거가 시작될지 모르지만 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주민들이 부산외대가 주민 몰래 땅을 매입했던 당시의 지가대로 부지를 매입하려고 했지만 외대가 이를 거부했다. 산림청 소유 부지 매입도 시도했지만 보존지역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정부와 지자체가 전국 곳곳에 형성된 도시빈민들의 무허가 주거촌을 방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연우암공동체 최동식 총무는 “개발 사업할 때는 지자체가 기업들한테 각종 해택까지 주면서, 주민들이 집을 짓는 것은 도와주지도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의지가 중요하다. 반빈곤센터는 윤웅태 대표는 “주거권을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정책을 펼쳐야한다”며 “원주민을 몰아내는 재개발이나 주민의 의지와 무관한 도시재생사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펼쳐야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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