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금은 날고 싶은 남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한 취재기자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에게 물었다. “당신은 하늘을 날 수 있나요?” 그러자 조던은 답했다.

 

“조금은”

 

  여기 또 한명‘, 조금은’ 날 수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농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족구를 한다. 그의 이름은 홍만섭(안재홍 분). 식품영양학과 복학생이고 나이는 24세. 평균학점 2.1. 토익 점수 아직 없음. 꿈은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 특이사항, 족구를 좋아한다. 족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총장과의 대화에서 테니스장으로 바뀐 족구장의 재설치를 건의할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족구장은 시끄럽고 미관상 나쁘다는 이유로 철거되고 족구를 즐기는 이 또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이상한 놈 취급이다“. 취업준비하기 바쁜데 족구라니?”“, 땀 냄새 풍기는 족구는 싫어”

 

  하지만 만섭은 포기하지 않는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막무가내 정신으로 똘똘 뭉친 만섭은 영어 강의 조별 연극발표에서 안나(황승언 분)에게 연극 파트너 요청을 하고, 그녀를 좋아하는 전직 축구 선수 강민(정우식 분)과의 족구 대결에서 승리한다. 족구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고, 수많은 복학생들 내면에 족구에 대한 열정이 끓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족구대회가 열리고, 만섭은 그의 친구들 창호(강봉성 분), 주연(황미영 분)과 함께 족구대회에 참가한다.

 

  그렇게 참여한 족구대회. 하지만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창호는 여러 고수들과 비교하면 실력이 떨어지고 주연은 아예 공을 건드리지도 못하는 상황. 말 그대로 만섭이 팀을‘ 하드 캐리’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상대팀에는 절치부심한 강민마저 합류했다. 경기가 길어질수록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온다. 그 순간, 만섭은‘ 조금은’ 날아오른다. 그는 족구왕, 아니 마이클 조던과 같은‘ 족구 황제’가 된다.

 

#2. 날지 못하는 세대에 대하여

 

 

  픽션인 문학, 영화에서도 모든 것이 완벽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보통은 한 가지씩 부족하고 조금 나사가 풀려있다. 그래야 이야기를 쉽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족구왕>은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를 쉽게쉽게 풀어가는 느낌이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부족한 점을 우리에게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적, 열등감 등 우리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걸 극복하는 과정을 <족구왕>은 보여주고 있다.

 

  날지 못하는 세대. 날개가 꺾인 세대. 그것은 지금의 20대를 상징하는 말 중의 하나다. 등록금은 학생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TV만 틀면 나오는 말이 청년실업, 취업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혼자 날개를 접어버린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 꺾여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날지 못한다고 사소한 행복까지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족구왕>은 그것을 만섭과 친구들의 의지와 열정으로 보여준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남들의 시선이 모든 게 아니라고. 이 영화는 작고 사소한 행복을 놓지 않은, 나아가 더 큰 행복을 찾아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3. 크레딧마저 즐거운 영화

 

  <족구왕>은 아이러니하다. 영화의 분위기는 유쾌하다. 지루한 틈이 보인다 싶으면 그 순간을 비트는 연출이 재밌다. 아이러니는 그 유쾌한 분위기와 현실과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주인공 만섭은 이대로 가면 구직의 낙오자가 될 확률 높기 때문이다. 그 암시 역시 영화 속에서 형국(박호산 분)의“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 등의 대사로 드러난다. 이때 아이러니는 두 방면으로 작용한다. 희극 속에 가려진 비극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그 비극마저 뚫어내는 희극을 강조한다. <족구왕>은 후자다. 열정과 유쾌함은 현 상황에 대한 생각을 뒤로 제껴 놓는다.하고 싶은 것을 해라. 강하게 말하고 있다.

 

  유쾌함은 이야기의 끝을 넘어 엔딩 크레딧까지 연결된다. 영화의 엔딩곡은 페퍼톤스의‘ 청춘’이다.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노래는 관객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 동안 청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둥의 소리가 아니다. 그냥 듣고 있으면 즐겁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족구하는 소리 하지마! 영화는 영화일 뿐이야!” 하지만 어쩌랴. 엔딩 크레딧마저 흥겹다. 이 사소한 유쾌함을 즐기자. 단 2시간만이라도.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