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단어는 ‘혁신’인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 재난관리 시스템의 혁신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였고, 윤 일병 사건을 매개로 병영문화 혁신이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대학의 혁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혁신(innovation)이란 용어는 “새롭게 만든다”는 뜻의 라틴어인 인노바레(innovare)에서 유래하였다. 한자로서 혁신(革新)은 새로운 가죽을 만드는 일에 해당한다. 하나의 피혁(皮革)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의 가죽(皮, skin)을 벗긴 후 이를 다듬는 무두질을 통해 쓸모 있는 가죽(革, leather)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껍질을 벗기는 아픔과 섬세한 무두질이 있어야 혁신이 되는 셈이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며 이에 대한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기존 체제에서 이익을 본 세력이나 개인은 혁신에 저항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점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수혈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집단의 참여를 보장하거나 적어도 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에 유가족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병영문화 혁신에서 군 외부의 감시가 요청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혁신을 제대로 추동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더는 혁신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한 사회나 조직의 리더가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라는 식으로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혁신은 이루어질 수 없다. 리더가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침묵하거나 의사소통의 범위를 주변 세력으로 국한해서도 곤란하다. 이른바 ‘불통(不通)’은 혁신의 커다란 걸림돌이다. 게다가 불통이 불신으로 이어지면 백약이 무효가 될 수도 있다.
 
  혁신은 사회적 합의의 일종이며, 이에 대한 적절한 규칙을 마련하고 준수하는 것이 요청된다. 시간에 쫓겨 함량미달의 합의를 성급하게 도출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성급한 합의에 앞서 세밀한 규칙을 마련해야 하며, 그러한 규칙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이나 관계자들이 동의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규칙에 따라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 과정에 참여한 집단이나 개인은 승복해야 한다. 합의란 명목으로 얼렁뚱땅 의사를 결정하고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거부하는 식의 전철은 더 이상 밟지 않아야 한다.  
 
  이상에서 혁신의 조건으로 외부 집단의 참여, 소통의 리더십, 합의에 대한 규칙의 준수 등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우리 사회, 우리 대학, 그리고 나 자신이 혁신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물어볼 때다. 더 나아가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혁신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문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혁신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고통 없는 혁신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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