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대 마린시티의 모습이다.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이곳에는 통유리 건물이 즐비하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을 뿐인데
  화려한 건물이 늘어선 해운대 센텀시티. 최신식 주상복합건물에 거주하는 A씨의 일상은 커튼을 걷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리를 통해 훤히 비치는 여름햇살을 피하기 위해서다. 창도 열리지 않아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내내 틀어놓아야 한다. 덕분에 ‘개도 걸리지 않는 여름감기’를 앓게 됐다. 환기는 인공통풍기가 해주지만 답답한 공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개강을 맞아 등교한 A씨. 무더위 속에서 캠퍼스를 ‘등산’한다. 얼마 전에 완공된 건축관이 땀에 쩔어있는 A씨를 반긴다. 물론 건물 안에서도 따가운 햇빛을 피할 곳이 없다. 감기에 걸렸기에 그늘보다는 햇빛이 좋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한다.

  강의를 모두 마치고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향하는 A씨. 병원 인근 지하철역에도 햇빛이 쏟아진다. 한여름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병원에 도착한 A씨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다. 건물 안이 햇빛으로 가득하다. 아아, 온갖 세균이 다 죽어버리겠구나. 긍정적이다.

 
 
  우리학교 건설관, 부산역, 벡스코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통유리 건물이라는 것이다. 통유리 건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KNN센텀신사옥 같은 빌딩은 물론 강서구국민체육센터, 부산시학생예술문화회관 등 공공시설물까지 통유리로 많이 지어지고 있다. 
 
  통유리 건물이 이렇게 각광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이다. 유리의 투명함은 개방감을 느끼게 해주고, 유리의 매끈한 모양과 색상은 첨단건물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유리를 이용해 지은 통유리 건물은 센텀시티, 마린시티 등 신시가지를 건설할 때 인기가 많다. 유재우(건축) 교수는 “통유리 건물이 디자인은 세련돼 도시계획을 할 때 제도적 심사에서 많이 뽑힌다”고 전했다.
 
  이렇게 '있어 보이는' 통유리 건물, 과연 겉모습만큼이나 속도 첨단을 자랑할까? 정소현(식품영양 2) 씨는 “통유리 건물이 예쁘긴 예쁘지만 실제로 살기에는 별로일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통유리 건물의 주거환경의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통유리의 가장 큰 문제는 여름마다 높아지는 관리비이다. 원인은 냉난방비이다. 유리는 단열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여름 바깥의 열기를 차단하지 못한다. 통유리 건물의 경우 유리의 면적까지 넓어 건물의 단열성이 더욱 떨어지게 된다. 센텀시티 롯데갤러리움에 사는 ㄱ씨는 “평균 관리비가 한 달에 100만원이 나오는데 여름에는 두 배가 넘는다”고 전했다. 
 
  인공통풍 구조 또한 높은 관리비에 한 몫 한다. 통유리는 창문을 열지 못하거나 창문이 조금만 열려 통풍을 인공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통풍을 하는데도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인공통풍은 실내를 고온건조하게 만든다. 이렇게 높아진 온도를 낮추기 위해 냉방을 하게 되면 관리비는 더 높아진다.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다. 통유리 건물에 이용되는 유리는 완전히 투명한 유리가 아니지만 내부가 완전히 비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면유리이기 때문에 내부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도 좁다. 마린시티 두산위브더제니스에 사는 ㄴ씨는 “아래층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부를 쉽게 볼 수 있어서 불안하다"고 말하며 "딸아이의 방은 주로 커튼을 처 놓는다”고 전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안전성이다. 통유리는 소재 자체가 가벼워 초고층 건물에 많이 활용되는 만큼 안전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자연통풍이 어려운 통유리 건물은 화재 발생시 연기 배출이 어렵고 내부로 쉽게 퍼진다. 금정소방서 예방안전과 관계자는 “통유리건물의 경우 스프링쿨러와 피난통로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화재 시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안영철(건축공) 교수는 “유리는 근본적으로 기존의 벽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건물이 될 수 없는 유리를 건물로 만들기 위해 유리의 단점을 보완해줄 첨단 장비가 갖춰진 건물을 짓고 있다. 이 비용은 또 거주자가 떠맡게 된다. 통유리 건물은 살기 위한 건물이 아니라 보기 위한 건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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