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개인 역량의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량을 키우면 된다. 물론 타고난 키나 얼굴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연애란 외형적 매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연애가 간절하다면 자신만의 매력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특히 최근 들어 부각되는 문제들이 있다. “피 끓는 청춘인데 설마 사랑을 몰라서, 느끼지 못해서 연애를 하지 않는 거겠어요?” 그가 반문했다. "마음에 드는 여자들이야 늘 눈에 띄죠. 눈은 그녀들을 쫓아 움직이지만 마음까지 따라가기엔 지금 저에게는 사치고 낭비예요” 그는 장학금을 일부 받고 있지만 등록금은 너무 비싸고, 생활비까지 벌어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3개나 하고 있다고 했다. "동갑내기 여자 친구를 사귈 때 그 친구는 성적 욕구가 충만했어요. 하지만 전 고시원에 살고 있고 그 친구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섹스를 하려면 숙박업소를 이용해야 했는데, 대실만 하는 것이라도 남자가 내는 게 당연한 인식 탓에 저에게는 부담스럽기만 했어요. 게다가 늘 피곤한데 섹스를 하면서 힘을 쓰는 것조차도 버겁다는 걸 느낀 거죠. 그래서 헤어진 상태고 당분간 연애할 생각이 없어요”

“요즘 20대 남자들이 여자를 만날 땐 오직 섹스만이 목적인 것 같아요!”라고 하소연하던 여대생들의 사연이 “이제는 남자들이 먼저 다가오지도 않고 섹스를 먼저 제안하는 일도 없어요”로 바뀌고 있다. 처음 연애를 하면 섹스를 하느냐 마느냐로 실랑이를 벌이는 일만큼이나 20대의 섹스리스가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혹자는 자발적으로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 학업에 매진하고 돈도 벌어서 좀 더 여유로워진 30대에 관계를 맺어도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인생에는 각 시기마다 경험해야 하는 단계들이 존재한다. 개개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청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20대에 분홍분홍한 색채가 사라진 채 살아나가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된 회색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젊음을 잃고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에너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사회 구조가 젊다는 이유로 20대에게 많은 것들을 참으라고 말한다. 기꺼이 아프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세대들의 20대는 어땠을 것 같은가? 지금 청춘들과 같은 고통을 겪었을까?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기 시작한 현재의 20대의 현실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학은 교육이 목적인 지 이윤 추구가 목적인지 모를 정도로 등록금을 높여가고, 빚을 져가며 대학을 졸업했지만 정규직은커녕 비정규직이 되기도 쉽지 않다. 비정규직이라도 어렵게 구해 일을 시작해도 기업은 언제든 바꿔 끼울 수 있는 나사처럼 직원을 다룬다.

불안정한 상황에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 먹고 자고 싸는 것과도 동등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절제하게 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문제의식이다. 이런 문제는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해결책을 뾰족하게 제시해줄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당사자인 20대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체념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섹스는 삶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그것이야말로 작은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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