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세상의 균형추가 껍데기의 성장에서 알맹이의 성숙 쪽으로 이동 중이다. 도시정책의 최종 소비자인 시민들(이용자들)도 양의 성장 보다는 질의 깊이로 도시정책의 기조 전환을 더욱 종용하고 있다. 급성장 시대를 지나온 도시들은 이미 성숙사회에 알맞은 도시정책을 펼치고 부산도 같은 맥락 속에 놓여 있다. 도시정책의 기조는 소수의 거대자본과 권력 축적 위주에서 시민들의 생명존중과 생활의 질적 가치 위주로 점차 회복 및 전환되어 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 도시가 주체적으로 배양시켜 온 ‘잠재자원’을 살리고 ‘체험의 질’로 연결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무슨 잠재자원을 중요하게 보아야 하고 진정성 있는 체험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 것인가?

부산은 자연 위에 역사적 사건과 이야기가 겹쳐져 잠재자원이 매우 풍부하게 놓인 도시이다. 산과 물이 이룬 빼어난 자연경관을 뽐내는 산수 풍경의 도시이자, 그 위에 특별한 도시형성의 과정을 그린 역사적 도시이다. 자연의 골격은 산을 타고 내린 물줄기가 굽이쳐 바다까지 이어진다. 낙동강, 수영강, 온천천, 동천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강줄기들이 드넓은 바다에 연결된 부산은 산과 물줄기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산과 물 사이의 공간인 ‘물터(강 주변 공간과 바다 주변 공간)’는 아주 오래 전부터 부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임진왜란(1592), 개항(1876), 625전쟁(1950)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무대이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시점에서 부산의 잠재자원을 토대로 미래 정체성을 견지할 때, 부산이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도시공간 구조의 형성 방향은 자연의 생명과 시간의 역사가 중첩된 ‘물터’의 재생과 통합적 연결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바다 주변에 형성된 지역(바다물터)과 내륙의 강 주변에 형성된 지역(강물터)을 하나의 도시로 통합해 낼 수 있는 비밀코드는 자연과 역사가 만들어 준 잠재자원의 원천인 ‘물터의 통합적 연결망’이 아닐까? 남북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서측의 낙동강중앙의 동천동측의 수영강 등의 강물터의 재생과 동서방향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 주변의 물터 재생이 조화롭게 만나는 통합적 도시공간구조의 재편을 상상해 본다.

물터의 자연과 시간이 전해주는 생명과 역사적 의미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이 담아야할 기능과 성격을 능동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저 방치되고 버려지고 쓰레기더미 같은 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품어 우리의 삶을 담고 연결하는 체험의 장소로 변모시켜야 한다. 부산 전역에 걸쳐 있는 바다의 매립ㆍ매축공간과 강의 복개공간을 창조적으로 변모시킬 채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물터의 메움에서 품음, 나뉨에서 이음, 버림에서 살림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물터를 중심으로 생명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위대한 부산’의 도약을 그려본다. 바다와 육지가 통합된 도시공간 체계의 대전환을 꿈꾼다. 어떤 비전과 가치를 중심으로 구체화할 것인지 광범위한 논의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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