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된 것 이다. 국가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국가가 무엇과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정치학의 오랜 탐구 주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국가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이 이루어진 계기는 세월호 참사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식민지 시대에는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정언 명령적 사고를 중심으로, 그리고 분단 이후에는 통일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사고를 중심으로 살아왔다. 국가를 재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지고한 가치가 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은 국가 중심주의와 국가 우선주의 사고를 벗어나 국가가 나와 내 가족에게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주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희생자를 제대로 구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가가 자본의 탈규제 노력을 관리하지 못하고 공무원과 관련단체 간의 부패의 사슬을 방치하고 조장했다는 점에서 국민 개개인이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제공했다.

국가와 정치권력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정치학적 설명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와 정치권력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둘째, 공동체주의자들은 국가와 정치권력의 존재이유는 국민들이 바라는 공동의 가치와 희망, 즉 공공선이나 일반의지를 국가와 정치권력이 추구하고 제공할 때 발생한다고 본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와 정치권력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으며, 어린 학생들을 구해내라는 국민들 공동의 요구도 져버렸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국가와 정치권력의 실체는 자유주의자들과 공동체주의자들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첫째, 국가는 탐욕에 빠진 선주와 자본의 탈규제 노력에 손을 들어 줌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방기했다. 둘째, 선출된 정치인과 공무원은 국가 기구를 구성한다. 공무원과 정치 권력이 국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참사는 국가가 단지 책임을 방기한 것이 아니라 직접 조장한 측면도 존재한다.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탈규제를 수행했으며, 부패한 전현직 관료들이 선박의 안전 관리 대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국가와 정치권력의 실체는 부패와 무능과 사리사욕에 다름 아니었다. 국가와 정치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지킨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바라는 공공선을 추구한 것도 아니었 다는 것이다.

희생자들을 잊지 않는 것, 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계속 성찰하여 개혁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철저한 진상규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중심적이고 국가 우선적인 가치와 사고가 이제는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국민들이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국가와 정치권력이 나와 내 가족에게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에게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찰의 시작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진다는 헌법 7조의 진정한 의미를 숙고하는 것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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