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톤(keystone)이라는 건축 용어가 있다. 유럽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치형(Ω) 건축물의 가장 위쪽 중앙에 마지막으로 집어넣는 돌이다. 이 돌은 건축물 전체를 떠받치는 요석 역할을 한다. 완성된 건축물에서 이러한 키스톤을 빼버린다고 생각해보자. 건축물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해서 결국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건축물의 요석이 키스톤이라면, 생태계에서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어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듯이 핵심종은 키스톤의 의미를 응용한 개념이다. 일정 지역의 생태계에서 생태 군집을 유지하 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종으로, 어느 한 종의 멸종·생장이 다른 종들의 종 다양성을 결정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그 종에 따라 생태계 흐름이 달라지기도 한다.

지난 4일, 4년 만에 지역의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지방선거가 진행됐다. SNS에는 초 단위로 투표인증샷이 올라왔고, 언론사는 앞다투어 개표진행 상황을 생중계했다. 시민들은 텔레비전 스크린에 뜬 각종 숫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렇게 뽑힌 인물은 지역발전을 책임지고 추진할 지역 일꾼이다. 그는 자녀들의 교육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내는 세금을 지역에 쓸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지역 대표자들은 우리가 서 있는 이 사회의 키스톤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 시대 대표자들은 키스톤보다는 핵심종에 더 가까운 듯하다. 사라졌을 때 집단 전체가 붕괴돼 버리기 보다 행동 양상에 따라 집단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지난 시간 동안 지역 대표의 영향력을 피부로 느꼈다. 수차례 무너지는 아치를 보며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던 많은 사람들은 다시 피어난 희망을 잡기 위해 투표소를 찾았다.

지금 무엇보다 당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정성 있는 태도로 공약 이행에 임하는 자세다. 이미 많은 이들은‘대표자’라는 수식어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소통하지 않는 윗사람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고, 공약이 실천되는가를 지켜보기 전에 공약 제시 단계에서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가‘ 무엇에 대한 불신은 다른 무엇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다’고 했던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불신을 ‘맹신’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은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는 것뿐이다.

땅 속에 묻혀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고용환경 악화로 20 대의 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지역의 상황을 해결하려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몇 해째 ‘낙하산 인사가 난무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문화행정계가 변화하려면 지역 예술인으로 대표되는 민간 전문가들이 행정의 중심에 서야한다. 자꾸 사라져버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4년을 책임질 키스톤은 결정됐고, 우리는 다시 우리만의 아치를 만들고자 한다. 4년 뒤 보게 될 키스톤은 금이 간 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모습일까, 중심에서 균형을 잡아 건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모습일까. 키스톤의 자리마저 아래에 있는 돌에게 내어주는 지도자의 모습을 ‘바람’으로만 남겨야 할 것인가. 더 이상 무너진 아치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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