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승효상 건축가

철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이란 경계 밖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추방해야 하는 자’라고 말했다. 건축가는 한 명의 지식인이다. 평면도를 바라보는 건축가는 매일 경계를 박차고 나가 고독함을 견디며 자신을 객관화한다.

‘빈자의 미학’을 자신의 건축 철학으로 삼은 건축가 승효상의 이야기다. 수졸당, 수백당, 웰콤 시티 등의 작품을 남긴 우리나라 건축계의 수장으로, 지금도 다양한 건축 활동을 계획 중이다. 그가 12년 전 직접 설계해 만든 이로 재건축사무소에서 그의 건축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간간히 튀어나오는 부산 사투리는 은근한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사람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사람을 만든다

△건축가를 정의하는 방법이 일반인들과는 다르신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건축가는 내가 사는 곳을 설계하거나, 남 이 사는 곳을 설계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야기하면 건축가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지요. 건물의 디자인이 목적이 아니라 사는 사람의 삶의 형식을 디자인하는 거죠.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설계와 내부 인테리어에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해요. 건물에 사는 사람을 관찰하고 삶을 파악하는 것이 건축가의 기본적인 임무 중 하나지요. 건물이 지어지는 땅을 파악하는 일, 살게 되는 사람을 파악하는 일. 이 두 가지가 건축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기둥’이라고 말할 수 있지.

△ 많은 저서에서 옛 것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옛집들 보면 정말 완벽해. 단지 옛 것이라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견디고 오래 남아있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거에요‘. 오래된 현재’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 시간의 풍상을 견디고 세월을 기록해서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것. 이런 것은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이지. 웬만하면 버티고 나갈 수가 없거든. 건물이 아무리 못생겼어도 온갖 위험 요소를 견디고 현재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어요. 사실 건축은 건축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거든요. 사람들의 삶이 덧대지면서 건축이 사람들 품에 들어오죠. 그 사람들이 만드는 건축이 근사한 것이지 원래 건축이 근사한 것이 아니에요.

△사람의 삶을 건축에 반영하기도 하지만 건축 자체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윈스턴 처칠이 바로 그 말을 했어요. 영국 의사당회에서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말을 했지요. 그러니까 건축은 우리 삶을 바꿔요. 무척 더디지만 분명히 바꿉니다. 좋은 건축 속에 살면 좋아지고, 나쁜 건축 속에 살면 나빠지죠. 건축을 물적 대상으로만 취급하고, 부동산으로 취급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고 죄악이에요. 건축으로 장난하거나 희롱하는 꼴을 나는 볼 수가 없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축을 단지 물적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 선조들은 집안에 신을 모시고 산다고 믿을 정도였으니까. 그야말로 건축을 윤리적인 대상으로 삼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 했었지요. 그런데 이게 지난날‘잘살아보세’라고 하는 구호에 휩쓸리면서 바뀌어버렸죠. 건축은 부동산이 되어버렸지. 하이데거의 말에 따르면 ‘건축은 우리 인간 의 존재’에요. 건축을 부동산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인간과 우리 삶을 부동산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지. 이러한 생각에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내고, 지금까지 저항해왔지.

다스릴 수 있는 분노를 품은 남자

승효상 건축가의 스승은 고 김수근 선생이다. 김수근 선생은 한국 전반의 문화를 아우르며 우리나라의 건축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스승에 대해 묻자, 그는‘분노’라는 한 단어만 조용히 읊조렸다. 그가 김수근 선생에게서 배운 것은 비단 건축 지식만이 아니었다.

△김수근 선생님 밑에서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건축을 배우셨습니다

원래는 신학을 공부하려 했어요.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하지 못하고 누나의 권유대로 건축 공부를 했지요. 대학에 다닐 당시 유신독재로 길거리에는 돌이 날아다니던 시절이었지요. 돌을 던지는 대신 건축을 하기로 결심했으니까 미친 듯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투쟁의 대상이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것이 김수근 선생님이었어요. 무진장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었는데, 이 분을 넘는 것이 목표였죠.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 대한 생각으로 싸우는 것이었어요. 매일 밤을 지새우고도 아침에 선생님을 만나면 깨지고 패배당했죠. ‘언젠가는 이겨야지’라며 건축 일을 해왔는데 지금은 돌아가버리셨으니까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반복되는 패배에 지쳤을 만도 한데요

김수근 선생님은 나한테 분노였어요. 자꾸 분노란 말을 쓰게 되는데, 적당한 분노가 있어야 부패하지 않아요. 특히 젊은이들은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분노 하나는 품고 살아야 됩니다. 다만 통제할 수 있는 분노를 가져야 해요. 너무 극심한 분노의 경우 자기 파멸에 이르게 하고, 분노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살 이유가 없지요.

△어린 시절에는 부산에서 생활했다고 들었습니다

북에서 남하한 사람들끼리 피난민촌에 모여서 살았어요. ‘부산 서구 서대신동산가 184번지’ 내 본적지를 아직도 정확히 기억해요. 지금은 도로가 확장되는 바람에 없어졌지만.

최초의 기억이 세 살 때인데, 동생이 어머니를 독차지 하길래 때를 썼더니 어머니께서 발로 차서 밖으로 내쳐졌지. 앞집에 있던 누나뻘 되는 사람이 우는 내를 업고 마당을 빙빙 돌았던 기억이 있어. 그게 내가 인지한 첫 번째 공간에 관한 기억이야. 그 마당이 여덟 가구가 같이 모여서 사는 마당인데 우물 하나, 변소 하나가 있었지요. 풍경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아침마다 북새통이고, 낮에는 아주 고요하고, 저녁에는 항상 축제 분위기고. 그게 내가 인지한 첫 번째 공간이자 내 귀소본능을 만족시켜 주는 공간이에요.

△평생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은 그러한 공동체 공간에서 발견하신 건가요

빈자의 철학은 잘 사는 사람을 위한 철학이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잘 사는 사람이 빈자처럼 살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가난할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절제할 줄 아는 것이에요. 십 층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옆집이 삼 층이면 삼 층만 지어 지을 줄 알고, 길과 길 사이에 자신의 땅이 있다면 쉽게 이동하기 위해 기꺼이 땅을 내어주란 말이에요. 또 집을 지을 때 지나가는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여유 공간을 만들어두라는 것이에요. 결국 더불어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죠.

△‘빈자의 미학’과 함께 ‘터무늬’의 가치도 중요하다 하셨습니다, 터무늬를 파악한다는 것은 옛 것을 알면서 새 것도 안다는 ‘온고지신’의 개념과 유사한 것인가요

온고지신과는 의미가 조금 달라요. 모든 땅은 터무늬라고 하는 고유한 무늬를 가지고 있죠. 새롭게 집을 짓는다는 것은 새로운 무늬를 그 위에 얹는 거에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얹는가의 문제지요. 아파트는 원래의 무늬를 모두 지워버려요. 땅을 모두 파헤치고 축대를 쌓지요. 터무늬 없이 만드니까 그야말로 ‘터무늬 없는’ 집이 만들어져요. 근데 좋은 설계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본래 땅에 새로운 무늬를 덧대는 거에요. 무늬가 더 올라탔으니까 더 풍부한 무늬가 만들어지겠지요.

모든 땅은 자기가 어떤 건축이 되고 싶다, 어떤 도시가 되고 싶다고 말을 해요.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좋은 건축가인거죠. 이 일에 시간 소모를 많이 하다 보니 마지막엔 항상 밤을 새. 이게 몇 십년을 해도 항상 똑같더라고(웃음).

수졸당에서 부산대학교 정문까지

검색창에 ‘승효상’을 치면, 건축 작품 수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수의 저서가 쏟아져 나온다. 그는 <오래된 것들은 아름답다>, <건축 사유의 기호>,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 등의 저서에 건축을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해 성찰을 기록했다. 활발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통해 건축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쓰는 그는, 기자에게 다음 일정이 있다며 인터뷰를 서둘렀다.

△건축가는 모두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건축을 하나요

그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지요. 건축 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공공성이거든요. 개인 집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 건축의 소유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사유할 권리만 있는 것이지 소유할 권리는 없어요. 그 권리는 시민과 사회에 있지요. 건축가는 사회에 봉사를 해야지 건축주에게 봉사하면 안 되요. 건축주에게 봉사하면 건축주의 시녀나 하수인밖에 안 되는 거지요. 이러한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건축가는 철학을 해야 돼요. 철학으로 건축주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부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도시 재생 사업 중 ‘벽화마을’의 부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마을 시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는데요

대부분의 벽화마을은 보여주기 위한 시도를 굉장히 많이 해왔어. 마을은 관광화가 되면 안 돼요. 진정성있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보여주기식 마을을 만드는 것은 그 마을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지속적인 공간이 못되는 거죠. 감천문화마을은 특히‘건축적 해결’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롭게 설계를 시도할 예정이에요. 겉을 장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옥 자체를 바꾸는 것이죠.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자극을 줘서 서서히 전체를 변하게 할 거에요. 한의학에서 머리가 아파도 손에 침을 놓아 치료하곤 하잖아요. 이러한 형태를 ‘한의적 치유’라고 하지요. 건축을 통해 자극을 주면 그 자극이 퍼져 나가서 전체를 바꿀 거라고 생각해. 6월쯤 부산시민들에게 직접 선보일 예정이에요.

△개교 70주년을 맞아 진행되는 우리학교 정문 개선 사업의 건축가십니다

대학의 정문이라는 공간은 중요해요. 부산대학교 정문 은 지금까지 잘못 유도돼왔지만 그만큼 가능성도 많아. 좋은 공간으로 바꿔질 잠재력도 충분하고. 문은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면서 두 세계를 융합시키는 공간이고, 다른 세계를 발견케 하는 장소에요,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빈번한 곳이고, 단순한 통과의 기능을 넘어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는 곳이지요. 최선의 안을 생각해서 대학에 전달했는데 이견이 많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의견 중 내 가치와 다른 것도 있고, 오해도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설명을 드릴 계획이에요. 그럼에도 다른 생각을 강요하면 그것은 내 설계가 아니니까 손을 뗄 수밖에 없지.

만족한 건축이 무엇이냐고 묻자 “하나도 없어. 다 실패했죠”라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이다. 신학자를 꿈꿨던 소년은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건축계의 거장이 됐다. 그렇다고 꿈이 좌절된 것은 아니다. 건축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깨달으면서 가장 구체적으로 신학을 실천할 수 방법이 건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승효상 건축가. 그가 정의하는 ‘건축가’라는 직업이 빛을 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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