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등장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대처하며 비겁함과 무능력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자신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고 대책 또한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다. 국민들의 조롱만이 늘어났다. 필자는 이를 지켜보며 내 생에 두 번은 볼 수 없을 것이라 감탄했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추한 민낯은 정부만의 것이 아니었다. 똑같은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학교 대학본부와 총학생회의 모습이다. 문창회관 성추행 사건에 대처하는 이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지난해 기숙사 성폭행 사건과 연관 지어 말한다. ‘교내 성범죄’라는 키워드는 흔하지 않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르다. 범행이 일어난 공간의 성격부터 상이하다. 기숙사와 문창회관을 단지 같은 캠퍼스에 있다는 것만으로 같은 범주에 포함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기숙사 성폭행 사건의 경우 책임은 전적으로 학교 측에 있었다. 허술한 보안과 대책이 예방할 수 있었던 범죄를 막지 못했다. 반면 문창회관 여자 휴게실 성추행 사건의 경우 학교측만의 책임으로 떠넘기기 힘들다. 그곳에 대한 규정이나 일체의 관리는 총학생회에서 담당하고 있고, 경비인력과 CCTV도 존재한다. 피해자는 사용시간을 지나 그 장소에 있었고, 심지어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 다는 소리도 들린다. 누구의 책임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문제는 책임 당사자들조차 이를 간과해 쓸모없는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본부는 학생들의 건물 잔류 자체를 막고 있다. 책임을 오롯이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학생들의 반발에는 묵묵부답이다. 마치 세월호 참사 이후 수학여행을 금지하려는 정부의 모습과 닮아있다. 총학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 없이, 학교만의 책임인 양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총학에는 책임이 없나? 자신들의 관리 부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고’와 ‘성명서’의 공방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여론은 학교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 한다’고 비난한다. 옳은 말이다. 다소 편협하고 일차원적인 대책은 여론의 뭇매를 맞기에 충분하다. 제대로 된 대책 없이는 사고가 반복될 뿐이다. 이를 가장 강력하게 비난하는 총학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학교에게 ‘어째서 이다지도 무책임 하’냐며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한다.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외양간 열쇠는 총학이 쥐고 있었다. 본부를 비난하려면 ‘제대로 된 학교 안전 대책’을 먼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아마추어 단체’를 자처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뚜렷한 책임주체와 원인이 없기에 대책을 세우기가 만만찮다. 그렇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 곳은 대학 본부와 총학이 유이하다. 할 수 있다기보다 해야 한다. 이들은 등록금과 투표를 담보로 의무를 짊어졌다. 책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 아웅다웅하는 사이 피해는 오롯이 학생들에게 돌아온다. 당신들의 학교가 아니다. 조롱만이 늘어날 뿐이다. 우리들이 보는 당신들의 모습, 이대로는 ‘덤 앤 더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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