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대학 사회복지대학원 석사과정에 유학을 갔을 때인 1984년에 보았던 모습이다. 웨스트 버지니아주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중턱에 위치한 아름다운 산골 마을로 우리나라의 강원도와 비슷하다. 어느 한적한 공휴일 머리를 식힐 겸 학교 동산에 올라 오가는 차가 별로 없는 먼 곳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후에 트럭 한 대가 먼 곳에서 오더니 어느 지점에 정지했다가 가는 것이었다. 트럭이 일시 정지한 지점을 유심히 살펴보니 거기에는 우선 멈춤 표지판이 있었다. 그 트럭이 지나갈 때는 앞에서 오는 차가 없었고 뒤에서 따라오는 차도 없었다. 물론 교통위반 차량을 단속하는 경찰도 없었다. 길가에도 아무도 없어 그 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트럭은 교통표지판을 정확하게 지키고 유유히 가는 것이었다. 혹시 우선 멈춤 표지판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차량이 있을까 해서 한참 동안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선 멈춤 표지판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차량은 한 대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사회에서는 보는 사람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성숙한 사회의 근간이 되는 질서와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로에서 신호등에 빨간불이 왔을 때는 멈추어야 하고 파란불이 왔을 때는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은 사회에서 정해진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느 한쪽은 원하지 않는 피해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파란불이 켜진 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널 때에는 눈에 불을 켜고 좌우로 오가는 차량을 열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파란불이 왔을 때 안심하고 건널목을 건너다간 신호를 무시하고 빠르게 달리는 차에 언제 치일지 모른다. 그 뿐인가? 건널목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경우 신호를 지키기 위해 정지선에 서있는 차량의 운전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힐끔 쳐다보거나 왜 가지 않느냐고 손짓을 하며 지나가는 차량들도 있다. 그래서 신호를 정확히 지키고 서 있는 운전수가 오히려 무안할 지경이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는 정해진 규칙과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비난 받는 사회인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정부부처를 개편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정부부처를 개편한다고 해서 국가가 개조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를 개조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약속된 질서부터 지키는 것일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교정을 거닐다 보면 일방 통행길을 역주행하면서 쌩쌩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발견할 수 있다. 질서를 지키지 않는 그 오토바이로 인해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성숙한 품위 있는 사회가 되려면 기본에 충실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작고 사소한 것이지만 남이 보든 보지 않든 교통질서를 지키고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회가 될 때 우리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기본에 충실할 때 자연스럽게 국가가 품위 있는 모습으로 개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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