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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러운이야기] 문화유산의 복원과 지역정체성
  • 차철욱(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 승인 2014.05.19 16:30
  • 호수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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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일본 사가현에 위치한 나고야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성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의 다이묘와 군사를 모아 조선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 성 이곳저곳을 방문하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잘 정돈된 성벽 중간중간이 훼손되어 있었다. 안내자의 설명으로는 임진왜란 후 일본을 방문하는 조선 통신사들에게 앞으로 조선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나고야 성 관계자들은 이 훼손된 흔적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복원하였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만든 나고야성도 하나의 역사이고, 성벽이 부분적으로 훼손된 것 또한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문화유산의 복원을 둘러싸고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갈등이 많다. 아무래도 복원을 위한 경비를 지원하는 측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남대문 복원이 국가적인 망신을 초래하고 있는 것도 복원을 주도한 국가의 문화재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부산에서도 지난해 11월 기존 영도다리를 없애고 새로 만들어 준공식을 가졌다. 영도다리는 1934년 11월에 개통된 이래 영도와 남포동을 오고 가는 부산 사람들의 생활 경험이 누적되어 온 곳이다. 무엇보다 자랑거리는 도개교라는 점 때문에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한국전쟁 때에는 피난민들이 헤어진 가족을 찾아 헤매던 장소였고, 근대화과정에서는 생계를 위해 넘나들던 목숨줄이었다. 노후화된 다리의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철거와 복원을 위한 논의 속에 지난해 11월 완전히 새 모습의 다리가 시민들 앞에 나타났다. 부산시는 사라진 영도다리의 이미지를 불러 내기 위해 준공식을 기존 영도다리가 준공된 11월로 맞추고, 명물이었던 다리 들어 올리기를 재현하였다. 15분간 들어 올려진 다리를 보러오는 관광객의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다. 복원을 주도한 부산시는 하루 방문객 수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화려한 성과 이면에는 다리 주변에서 생업을 해 오던 영도 사람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관광객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비싼 점포세를 지불하고 준공만을 기다렸던 영도 쪽 상인들에게 새 영도다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삶이 누적된 기억의 공간이 아니라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복원된 영도다리가 사라진 영도다리와 관계를 맺어오던 주변 사람들과의 호흡을 단절시켰음을 잘 보여준다.

문화유산은 위치한 공간과 구성원들에 의해 끊임없이 의미를 재구성해 간다. 문화유산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화유산의 복원이란 구성원들의 경험과 기억으로 의미를 재구성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문화유산 복원을 위한 주체들 사이의 갈등은 치열하다. 복원을 위한 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정체성의 재구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지방정부, 자본, 시민 혹은 당사자 등. 문제는 국가나 지방정부의 문화재 복원정책이 구성원들의 삶의 경험과 기억보다는 정책의 합리성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야리아 부대를 재단장해서 만든 부산시민공원이 시민들의 휴식공간은 될 수 있어도 경마장과 미군 부대 하야리아가 만들어왔던 부산사람들의 기억을 삭제해 버렸다는 점은 못내 아쉬운 점이다.

차철욱(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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