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규 소설가께 보내는 사신(私信)

정태규 소설가는 부산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부산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창작집 <집이 있는 풍경>과 <길 위에서> 등을 간행 하였다. 필자는 최근 그의 신작 단편 소설 <비원(秘苑)>(좋은 소설, 2013 년 겨울호)을 읽고 많이 울었다. 아마 이렇게 쓰기 힘들고 막막한 독후감은 없을 것이다. <비원>이라는 작품……, 아니 이 슬픈 이야기는……, 서울의 어느 대학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창덕궁의 후원(비원)을 같이 산책하고 또 각자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 사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으나 ‘루 게릭’이라는 병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인연이 되어 창덕궁의 후원에서 함께 반나절을 보내게 된다.

사내와 여성은 해설사를 따라 비원을 산책하던 도중, 존덕정에 이르러 해설사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인 적이 없는 숲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각자의 사연을 나누며 땅 위에 잠시 눕는데, 그 순간 둘은 거짓말처럼 ‘흙이 된 듯’, ‘나무가 된 듯’ 평화로운 잠에 빠져든다. 대지의 따뜻하고 포근한 생명력 속에서 숙면을 취한 그녀와 그는 밤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난다. 둘은 사람들이 사라진 길을 걸어 ‘ 숙빈 최씨’의 설화 공간인 ‘애련지’에 닿는다. 사내는 숙빈 최씨가 온몸에 부스럼이 났는데,‘ 이 연못에 뛰어들어 몸을 씻자 부스럼이 씻은 듯이 나았고 임금의 사랑도 다시 찾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내는 옷을 벗고 물로 뛰어드는데, 잠시 망설이던 그녀도 옷을 벗고 연못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둘은 연못 속에서 서로의 몸을 껴안고 불치의 공포를 함께 견뎌내고자 한다.

이 연못(물)의 상징은 정화보다는 치유에 가깝다. 자연의 원시성과 순환성을 통해 삶의 생명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순수한 생의 의지가 불치병에 걸린 두 주인공을 연못, 아니 비밀의 정원으로 이끈 것이다. 그래서 익명의 사내와 여성, 그 둘의 은밀한 사연을 간직한 비밀의 정원(秘苑)은 태초의 생명력을 간직한 생성의 공간인 동시에, 원시적 치유력과 절대자의 구원 의지를 담고 있는‘비원 (悲願)’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는 창덕궁을 나와 그녀에게 “살아남아요”라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럴게요. 당신도…”라고 대답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삶과 소멸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생의 의지가 익명의 타자로부터 전해지는 따뜻한 공감과 교감을 통해 가능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소설 <비원(秘苑)>의 저자인 정태규 소설가는 실제로 지난해부터‘루 게릭’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 이 작품은 양쪽 팔과 손을 움직이기 어려워서, 작가가 ‘구술 서사’를 하고 가족들이 그것을 활자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필사적인 글쓰기’이다. 이 소설의 내용을 말로 구상하는 작가와, 다시 그것을 문자화 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목이 메여온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필자는 정태규 작가가 <비원>의 엔딩 장면과 같이,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 잘 견뎌주시기를 바란다. 아니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그것은 아마도 필자 혼자만의 바람이 아니라, 그를 아는 선·후배 문인 모두의 간절한 비원(悲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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