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 기린, 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몸에 비해 큰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일찍이 이러한 눈 크기가 동물의 속도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이는 빨리 달리는 동물일수록 큰 눈을 가진다는 내용의 ‘로이카르트의 법칙’으로 정립됐다. 빠르게 달릴수록 충돌시 피해가 커지므로, 큰 눈을 통해 시야를 확보해 위험을 줄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이러한 법칙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유사한 크기의 눈을 가진 동물에 비해 달리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사람의 눈 크기는 평균 23.3mm인데, 이와 견줄만한 동물이 평균 22.5mm인 늑대다. 하지만 최대 속도는 약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진화학자들은 이러한 예외에 대해 사람이 달리는 것 외에 시각을 사용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눈은 단지 충돌위험이 있는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수많은 글자를 보는 것은 기본이며, 대화하는 상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파악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편집국 기자들의 눈은 취재거리를 찾느라 누구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더 이상 빠른 달음질이 필요 없는 인간의 큰 눈은 장애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존재하건만, ‘꼭 있어야 하나’라고 질문하고 싶은 게 요즘 심정이다.

지난 16일, 우리학교 문창회관 여자 휴게실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의 용의자가 약 한 달 만에 검거됐다. 용의자는 우리학교 대학원생으로 드러났으며 조사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숙사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이후 필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대처는 오직 잔류 금지 조치였다. 사건 발행 이후 해당 건물 뿐 아니라 대다수 건물의 출입시간을 제한하고, 뒤늦게 여자 휴게실 관리 주체를 대학본부로 바꿨다. 어떤 공간이 안전에 취약한지 파악하고 개선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걱정 어린 충고 대신 건물 입구에서 잔류 금지 시간이 적힌 종이와 마주했다. 어디에서도 사건의 본질을 보는, 적어도 보고자 하는 눈은 찾을 수 없었다.

비단 이번 성추행 사건에서 드러난 관리 주체의 부주의함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점점 더 로이카르트의 법칙에 순응하고 있고,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달려가는 속도만 빨라지는 듯하다. 축복처럼 부여 받은 큰 눈을 활용하지는 못할망정‘, 눈 뜬 장님’ 행세를 하고 있다. 국가정보보안원은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고, 송파구의 세 모녀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에는 꽃다운 나이의 동생들이 차가운 바다 밑으로 사라졌으나 이러한 장면을 직시하기보다 눈을 감는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면 더 발달하는 것이 진화의 순리라지만, 봐야할 것을 보지 않고 감아버릴 눈이라면 기꺼이 퇴화하는 것이 옳지 않나.

혹시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작은 눈에 대해 불평하는가. 그러나 걱정 마시길. 당신의 눈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정말 큰 편이다. 살을 에는 고통과 며칠간 계속되는 붓기를 감내하며 큰 눈을 만들기 전에, 스스로 키울 수 있고 키워야 할 눈은 따로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제 눈을 뜰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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