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순환협동조합’의 취지와 걸어갈 길

안 가자니 불안하고, 막상 가면 배울 것이 없는 대학.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전락해 버린 대학. 거대한 입시 불평등을 지속해서 양산하며, 대기업의 수익모델로 전락한 대학. 취업률이나 입시지원율이 낮아 통·폐합되는 학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운영의 위기를 맞으며 언제 통·폐합 당할지 모르는 수많은 지역의 대학들. 거침없이 상승하는 등록금에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로 전락하는 청춘들. 분과학문과 위계에 치우쳐 상상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학문 문화…. 현재 우리 대학이 처한 차가운 살풍경이다. 또한 이는 고질적인 입시 위주의 경쟁적 교육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며, 이 역시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는‘신자유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경쟁교육과 경쟁사회를, 협력사회와 협력교육으로

     
   
▲ 일러스트=신희연

‘지식순환협동조합’은 이러한 경쟁사회와 경쟁교육을 넘어, 협력사회와 협력교육을 실천하는 대안대학의 필요성에 공감한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시작됐었다‘. 누구나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한 진보적 소장학자들, 대학 바깥에서 2009년부터 약 80개의 강좌를 개설하며 예술-인문학 교육의 대중화를 실천했던 ‘자유예술캠프’의 기획단, 그리고 자연과학·여성학·사회과학·정치경제학·인문학·문화연구·예술창작·문화기획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여러 연구자들이 마음을 모았다. 현재까지 약 1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총 17회에 걸친 교과위원회를 통하여 대안 대학의 교육과정을 세밀하게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진보적 대안대학을‘협동조합’으로 설립하고자 했던 이유는 우선적으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위계 없이 서로 평등한 자리에서 지식을 나눌 수 있으려면 운영의 원리에서부터 서로가 평등하게 대학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지원 없이 자발적이며 자생적인 운영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조합원들이 매월 일정한 금액의 운영비를 지출하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현재 지식순환협동조합의 조합원은‘생산자 조합원’과 ‘소비자 조합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생산자 조합원은 문자 그대로 지식을‘생산’할 수 있는 조합원이다. 출자금 20 만 원과 월 조합비 1만 원 이상이 생산자조합원 가입의 조건이며, 대안대학의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생산자조합원은 교과위원회에 참석하여 대안대학의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데 참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직접 대안대학의 강사로도 활동하게 된다. 강사료도 받을 수 있음을 물론이다.

소비자 조합원은 지식을 주로 ‘소비’하고자 하는 조합원을 의미한다. 출자금은 3만 원, 월 조합비는 1만 원 이상을 납부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현재 소비자 조합원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 등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들 조합원이 기계적으로 구분된 것은 아니다‘. 지식순환협동 조합’은 지식의 자연스러운 선순환을 지향한다. 즉 소비자 조합원이 생산자 조합원이 되어 스스로 지식을 쌓고 다른 이들에게 공유할 수 있으며 생산자조합원 역시 다양한 학문의 강의와 세미나에 참여하여 지식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는 것이다.

협력교육 공동체

‘지식순환협동조합’이 지향하는 교육 이념은 ‘협력교육’이다. 여기서 협력은 다양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기존 대학들이 분과학문 간에 소통이 부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학문 사이의 교류와 소통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다양한 학문의 자연스러운 협력을 통하여 그 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사유들의 지점들을 발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학제간 연구, 융·복합, 통섭 등의 용어로 다양하게 설명되어 왔다. 하지만 기존의 대학에서는 워낙 학문 체제가 위계적으로 굳어 있기 때문에, 분과 학문을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들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바뀌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한계를 지닌다. '지식순환협동조합’은 이러한 학문 간의 협력을 교육과정의 기본 원리로 삼았는데, 이는 기존 제도 바깥에 위치하며 운영의 원리에서부터 자율성과 자발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현재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워낙 다양 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 에, 이를 실천하려면 아직 넘어서야 할 장벽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어 17회에 걸친, 그리고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 중인 회의를 통해 대안대학의 교육과정을 짜는 데 가장 많은 고민을 쏟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번째로는, 협동조합의 운영원리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경쟁 지향적이지 않은 평등한 ‘조합원’으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함께 지식을 순환시킨다는 의미에서의‘협력 교육’이다.‘ 지식순환협동조합’은 절대 독 방에서 홀로 공부할 것을 권유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와서, 같은 생각을 공유한 조합원들과 함께 강좌와 세미나를 직접 기획하여 여럿이 함께 공부하는‘학습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지식순환 협동조합’은 일반적인 강의 프로그램만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활용하는 워크숍 및 자기변화-탐구 워크숍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조합원들의 화합과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대중강좌 진행 중, 정규 대학도 개설 계획

현재 ‘지식순환협동조합’은 크게 두 가지 사업을 기획 중이다. 첫 번째로, 조합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대중 강좌 프로그램>이 있다. 2014년 4월부터 7 월까지 총 12개의 강좌 프로그램이 현재 진행 중이며 7월부터 9월까지의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2년제 정규 대안대학>이 있다. 이는 대중강좌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며, 사회 인문학·인지 생태학·문화기획실천이라는 세 가지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2 년간 이수하도록 한 것이다. 비록 대안대학에서 정규 학위 졸업장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입학생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멘토링하면서 논문이나 기획서, 각종 창작물 등 공부의 결과물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을 쌓도록 함으로써 앞으로의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대안대학 졸업 후의 진로 탐색을 위하여, 다른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의 영역, 기타 사회활동가로서의 경험을 쌓게 해주는 인턴십 프로그램도 고민하고 있다.

지식순환협동조합은 지난 2월 정식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아직 초기 단계이고 앞으로 넘어야 할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현재 대학이 점점 제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이 모여 대안대학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시도 자체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지식순환협동조합’이 만들어 갈 대안대학의 실험이 어떻게 될지는, 운영하는 차원에서도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앞으로 협력교육과 협력사회를 갈망하는 수많은 움직임과 함께 호흡하며, 지속 가능한 운영구조를 바탕으로 여럿이 함께 즐겁게 배우는 학습공동체를 끈기 있게 만들어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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