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버스를 타고 익숙한 거리를 지나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낯설게 다가옴을 느꼈다. ‘이 거리가 원래 이렇게 푸르렀었나?’ 그리고 새삼 반성했다. 온 도시를 물들였던 분홍빛에는 그리도 열광했으면서, 그 꽃잎이 지고 난 자리에 남은 초록의 무성함에는 이리도 무심했던가, 하 고 말이다. 꽃이 한창일 무렵 꽃과 함께 무수히 마음에 돋아났던 무언가도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그라져 버렸음을 깨달았던 오후.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곳에서 다가올 여름에 대비해 묵묵히 녹음을 넓혀가는 나무들이 대견해 보였다.

‘일상’은 그렇다. 묵묵히 무언가를 견뎌내는 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벅찬 삶이다.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든지 따위는 따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 끌려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개척해 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건 간에 오로지 홀로 감당해내야 할 일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이어 진다.

필자는 작년 겨울 건강상의 문제로 일상을 잃었던 적이 있다. 처음엔 루틴한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것들로부터 ‘소외’당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다지 주체적인 자세로 삶에 임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순간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던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사실 그것은 일상으로부터의 해방도 유배도 아닌, 그저 새로운 일상의 시작일 뿐이었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나갈 즈음, 필자는 일상의 ‘새삼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때론 답답해서 벗어나고 싶고, 모르는 척 등을 돌리고 싶었던 일들도 그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보니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런 한 번의 깨달음으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진부할지라도, 이런 것들을 한 번쯤은 절절히 느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나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모든 이들에게 새삼 고마워하고 또 새삼 미안해할 줄 아는 마음. 적어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삶은, 그러한 마음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의 삶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도 전자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근래에는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서 다시 일상 속으로 뛰어들어 하루하루 허우적대고 있다. 영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끊어졌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다행히 새로운 고리를 달고 이어져가고 있다. 이렇게 완전히 일상으로 녹아든 지금, 이처럼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차마 일어나서는 안될 끔찍한 사고로 인해 일상을,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웃들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먹먹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시련은 때로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가혹한 시련은 사람을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너무도 혹독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고 믿고 싶다. 현재 일상의 부재로 인해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이 하루빨리 일상을, 그 새삼스러운 감격을 되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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