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이다. 그래서 우리대학이 설립된 날을 기념하는 오늘은 지나온 과거를 단순히 되새기는 날 만이서는 안 된다. 이 땅 최초의 민립대학, 최초의 국립 대학이라는 설립의 의의와 현재의 상황을 새겨보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고희를 바라보는 부산대학교는 80년대를 정점으로, 20여 년 동안 그 위상이 점점 추락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비단 우리학교만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많은 대학이 직면한 현실이다. 자본의 논리에, 실용과 효용의 논리에 밀려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취업이 최고의 가치일 수밖에 없는 학생들에게 교양과 인격 함양, 학문과 정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뇌는 사치가 된지 오래다. 각종 평가와 실적, 성과연봉제 등에 내몰린 교수들에게 진정한 교육과 연구, 사회를 위한 비판과 봉사는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애초 그릇된 대학구조개혁으로 정부는 또한 대학과 학문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예전에는 학문이 가져다줄 눈 앞의 이익을 따지는 사람이 학문의 장에서 쫓겨났다. 유클리드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때의 일화다. 모래판을 둘러섰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그 실용적인 가치 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클리드는 경멸어린 어조로 하인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학문에서 이득을 얻으려 하는구나. 한 푼 주어 내쫓아라.”

이제는 학문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학문의 장에 머무는 것 자체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흔히들 부산대학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상이 아니라 당장의 현실을 생각하라고 한다. 현실이 없는 이상은 공허할 것이니 옳은 말이다. 현실을 위한 실용적인 학문을 거부한 산업혁명기 유럽의 대학 들이 겪은 시련을 돌이켜 보면, 대학의 이상을 무작정 고집할 수만도 없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이 없는 현실은 맹목이다. 당장의 현실도 중요하겠지만, 미래를 향한 진정한 이상이 필요하다. 눈앞의 실용과 효용에, 사회의 요구에 당장 멀어 보인다고 해서 대학이 그 본연의 이상마저 포기해 버린다 면, 새로운 지식, 창조적인 지식, 미래를 위한 상상력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실용과 효용, 자본의 논리와 사회적 요구에 응답하면서, 동시에 참된 교육과 학문적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 이중구속적인 상황이 지금 우리대학의 운명이다. 부산대학교 68년 역사와 의미를 반추해보고, 사회적 현실과 대학의 이상을 조화롭게 아우르며, 미래를 향해 나아 갈 수 있는 지혜를 다 함께 모아야 할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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