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풍덩하고 사랑에 빠져버렸다. 어릴 때 느꼈던 견디기 힘들 정도의 폭풍 같은 감정이 휘몰아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친절 함과 재치에 마음이 녹신녹신해져 버렸고 사이좋게 지내며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좋 았다. 사랑의 징후는 분명했다. 나는 잘 웃었 고 그가 하는 행동에서 칭찬거리를 찾았고 그의 곁에서 생의 격려를 나누고 싶었다. 함 께 있지 않을 때 불안한 감정이 치밀 때도 있 었다. 상대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라기보다 는 내 안에서 무턱대고 이는 감정이었고 그 럴 때마다 그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안심시켜 주곤 했다.

하지만 왜 그를 좋아하는 건지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을 싫어할 때는 이유가 분명해도 좋아할 때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마음이라고 하지만 곁의 빈자리, 외로 움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 버린다 는 건 내게는 치욕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 람들이 외로움 때문에 그 자리를 사람으로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삶의 원칙은‘ 타인을 통해 외로움을 해소하 지 말자’ 이기에 단지 지금 솔로 상태란 이 유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얼굴이 잘생겨서, 키가 크고 스타일이 좋아 서라는 경망스러운 이유라도 분명한 것이 안전했다.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상대를 좋 아하게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그의 모든 것이 내게는 장점이었다. 가끔 얄밉다 느끼는 부분 까지도 귀여웠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사랑이네’라고 말했 을 때 나는 손사래를 치며‘ 사랑까지는 아니 라고 그냥 좋은 거라고’ 말하고 넘어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구분이 대체 어떤 의 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연애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생긴 직업적 후유증이라면 자신의 연애를 지나치게 객관화하여 감정이 몰입 하는 걸 기피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나의 연 애에 대해서도 후일담으로 기록해야 한다 는 의무감에 끊임없이 지금의 감정을 의심 하거나 확인했다. 추후에 그것을 내 삶의 ‘사랑’이라고 서술해도 될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려고 애를 썼다.

이런 과정이 끼어들어 내 감정을 부정하고 사랑의 단계까지 올라온 건 아니라고 되뇌면 결국 나는 어느 순간부터 꼬리를 자르고 도 망가는 도마뱀처럼 굴고 있었다. 굳이 사랑 이 아니라면 소모되는 감정의 양이 많아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효율적인 감정 전력 관리는 핑계일 뿐 그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감정의 깊이만 큼 훅하고 입은 내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백지 상태에 서 백치처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 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고민스러워 하고 연애 상담을 해온다. 머리를 쓰지 말고,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해왔지만 나도 그 순간이 되자 덜컥 겁 을 먹고 말았다. 사랑에 빠졌다면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더라도 그 속에서 헤엄치는 게 사랑을 즐기는 방법이다. 한 발만 살짝 담근 채 그에게‘ 난 당신에게 빠져들었어요.’라 고 말한 들 설득력 있을 리 없었다. 이런 태 도로 사랑에 임했을 때 그 결말은 정해져있 을 뿐이었다.

연애에 대한 조언을 쓰며 언제나 나는 선 을 지키고 납득 가능한 말을 하려고 애를 썼 다. 하지만 입에 바른 그런 말의 실천가능성 이라는 것 혹은 나 역시 그 조언에 부합한 현 명함을 갖추었느냐 라고 말한다면 나는 여 전히 헤매고 있다. 이런 딜레마를 인정하고 사랑에 비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함께 할 때 내 삶과 글도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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