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선장은 탈출한다. 기울어진 배에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승객들한테는 객실에서 대기하라하고 선박직 선원 전원은 배를 버리고 탈출한다. 옷까지 갈아 입고서.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었던 어린(착한) 학생들은 어두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있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선에서도 충용 무쌍한 우리 국군이 한결같이 싸워서 오늘 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 가는 적을 추격 중이니 국민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대전으로 피란한 대통령의 방송 연설이다. 대다수 서울시민은 서울에 남았고, 정부 관료와 군·경찰 고위 관계자, 국 회의원들은 서울을 탈출했다. 재산까지 챙겨서. 그리고 방송 4시간 뒤 한강 다리를 폭파해버린다. 피란길 은 차단되었고, 3개월 후 서울이 수복되자 서울에 남았던 시민들을 상대로 부역자 색출에 나섰다.

엄마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아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들을 하면서 기뻐한다. 그러다 엄마 말을 듣 지 않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엄마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운 일 곱 살’이다. 깨달음이 깊어지면 새 로운 적이 나타난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불리는 사회의 규범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다. 아버지를 죽임으 로써 아이는 스스로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으면 아이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마마보이가 되는 것이다. 결혼을 해봤자 와이프보이 일 뿐이다. 이들은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가 드러나더라도 그것은 아내가 한 일이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한다. 이들은 책임질 줄 모른다. 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부를 잘한 애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아버지의 금기를 어기지 않았으며, 그 대가로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았다. 이들은 나이가 육십이 되어도 여전히 어린아이다.

책상 맡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할 것이지만, 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은 무 엇일까? 이들은 어쩌면 지식의 습득에 맹진하고 있는 것일 수 있는데, 고래로 지식은 권력이었다. 이들은 그저 권력욕의 화신일 뿐이다. 이들은 아버지를 죽일 생각이 없다. 이들은 물려받은 권력을 휘두르기만 한다. 이들에 의해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세상의 질서는 세워지지 않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라고 했다. 학생은 모름지기 선생을 죽여야 한다. 선생을 죽임으로써 학생은 선생이 된다. 학생을 학생으로 만드는 자가 선생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지 않으면 장강은 흐르지 않는다.

“종묘사직이 한성에 있는데 내가 어찌 한성을 버린단 말이냐!” 그러나 1592년 4월 30일 새벽, 선조는 궁 궐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른다. 사대문은 굳게 닫혔으며 백성들이 피란가는 것은 금지되었다. 조선 왕조는 그때 망했어야 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야 했다.

가만히 있지 마라. 이십 대는 가만히 있을 나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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