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녀보면 조선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라던 황지우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 이 나라의 모든 명소는 돈냄새를 풍긴다. 자본이 있고 거기에 행정이라는 이름의 국가권력이 결합하면 난개발은 어김없이 진행되고, 오래된 풍경은 스러져간다. 스키장이 필요하니 나무는 베어버리자, 궁궐 앞에도 호텔을 짓기로 하자, 설악산 대청봉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 골프장 진입로를 넓혀야하니 식물 군락쯤은 밀어버리자. 생태니 환경이니 역사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 오히려 천혜의 절경일수록, 역사성이 깊을수록 삽날과 캐터필러를 가져다 대고 기어이 사유화를 이룩해낸다. 토건시대는 끝날 줄 모르고, 여기엔 중앙과 지역의 구분이 없다.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에‘ 스카이라이더’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해운대 인근의 폐쇄된 철로에 몇몇 사업자의 제안대로 전동 바이크를 놓겠다 한다. 시민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라 한다. 여기엔 그 철길 위를 다녔던 80년간의 삶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 없고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환경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돈벌이를 위한 자본과 타성에 젖은 권력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 시민들 모두가 누려야 할‘ 향유권’이라든가 몇몇의 배타적 소유로 인해 침해당해선 안 될‘환경권’같은 미래적 가치는 한 줌도 담겨있지 않다. 제안서 접수 후 100일 이내로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당초의 계획에서 석달이나 앞당겨 단 열흘만에 내놓은 기민한 평가에는 고뇌도 절충도 망설임도 없었다.

본래 스토리텔링 개발이니 역사문화 콘텐츠 발굴이니 하는 관주도의 청사진들에 별달리 동의한 적 없었다. 오륙도의 경관을 해친다는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꾸역꾸역 설치한 구조물에‘ 스카이워크’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예의‘ 문탠로드’에서 별 진전없는 왜소한 어휘력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감천동의‘ 문화마을’에 이목이 쏠리자 이를‘ 벤치마킹’이란 이름으로‘ 자기표절’하여 엇비슷한 산동네를 죄다 무슨무슨 문화마을로 만들겠다는 최근의 발표에선 여전히 빈곤한 상상력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이에 더해‘ 스카이 라이더’는 민관 합작품이며, 자전거를 제안한 이들이 지역의 공공기관과 유력 언론사들이란 사실이 다르고 그래서 더 착잡하다. 보다 많은 이들을 위한 쪽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은 이제 누가 하며 반대의 목소리는 어디서 들어야 하는가.

심각한 것은 경관을 사유화하고 독점화하는 자본의 악력이다. 폐선에 자전거를 놓는 일도 시민을 위한 사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이는 호화리조트를 만들어놓고 시민을 위한 시설이란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액수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그‘ 시민’이란 돈을 가진 자에 한할 것 아닌가.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기초 인프라인 철도, 의료, 가스 등의 공공서비스마저 기업의 사적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가는 이 시대엔 풍경이며 역사마저 부가가치 높은 상품쯤으로 바뀌었고, 이제 그 대열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고 있다.

아름다운 바다를 호텔에 점령당한 제주와 천년 고도를 몰역사적인 관광단지에 내준 경주의 징후가 여기 부산에 뚜렷하다. 해가 지날수록 휘황하고 요란해지는 해운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미 계층적 분리를 명백히 실현해가고 있는 바닷가에 계통없이 놓인 오락 시설은 누구의‘ 스토리’도‘ 역사문화’도 아니고 그저 천박할 따름이다. 특별한 곳에 공공의 인프라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채 알량하고 째째한 잇속에 저 바다를 내어줘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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