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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인 것에 대한 단편들] (6)
  • 윤인로 문학평론가
  • 승인 2014.04.14 16:16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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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 형제복지원 (1990. 1. 13. ⓒ연합뉴스).

사진 속 공간 배치를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높은 곳, 더 높은 탑에서 아래를 관장하는 저 십자가를 주시해야 한다. 최대 3000명을 수용했던 이 ‘시설’은 이윤의 축적, 정치적 목적, 신성의 발현이 하나가 됨으로써 그 세 가지 모두가 안전하게, 동시에 완전하게 관철될 수 있었던 시공간이다. 위를 향해 차곡차곡 층층이 쌓아 올라간 저 높은 곳, 위압적인 그 꼭대기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십자가-눈(Crucifix-Eye). 그것은 수용된 3000명의 부랑인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죄지은 자들로 만드는 힘이다. 그런 한에서 그 십자가-눈이란 죄의 공장주이고, 죄의 주(主)이다. 알아서 죄스런 마음을 갖게 하는, 알아서 빚을 졌다고 느끼게 하는 마음의 공장. 각자가 스스로 죄(Schuld)와 빚(Schuld)의 마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서의 시설 혹은 수용소. 그런 마음의 생산 속에서 그들 수용소의 사람들은 죄와 빚의 주체로 거듭 합성된다. 막대한 경제적 착취와 축적, 군부에 의한 광나는 정치적 훈장과 메달은 저 십자가-눈이라는 신성과 함께 하나로 일체화된다. 그 일체적 공동지배 속에서 사람들은 구원되기 위해 절정의 노예상태를 지속해야 한다. 그런 한에서, 이렇게 묻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형제복지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을 항구적으로 지연시키는 환속화된 ‘연옥(purgatorium)’의 사회, 오늘의 체제이다.

 

윤인로 문학평론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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