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극제의 일정표에는 노란색으로 표기된 항목이 있다. 바로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부산시민연극제다. 이 연극제 속의 연극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산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연극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 시민연극제를 준비하는 많은 단체 중 화정실버공연단은 올해로 창단 6주년을 맞았다.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연극단을 직접 찾아가 봤다.

아이고 대사를 까먹었네! 어제는 기억했는데

지난 8일 화정복지관에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연극 연습 준비가 한창이었다. 감독이 도착할 때까지 배우들은 삼삼오오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극 이야기도 흘러나왔지만 대부분은‘ 누가 어제 뭘 했는지’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사이에서도 간간이 터지는 웃음이 연습 시작 전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잠시 뒤 연출자인 박동민 감독이 연습실로 들어오자 배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박 감독의 말을 경청하며 연극에 몰입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이 준비하고 있는 연극은 <나는 내 나이가 좋다>라는 연극으로 노인들의 성(性)과 사랑 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화정실버공연단은 <춘향전>, <내 생에 마지막 일주일> 등 노인 연극단이라는 특성을 살려 노년의 삶과 이야기에 대해 많이 전해온 터였다. 박동민 감독은“ 노인들의 성 문제는 잘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연극으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며 연출의도를 설명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연극 연습이 시작되었다. 주연배우들이 등장하고 연극이 진행된다. 5년이라는 시간동안 단련이 된 것인지, 연극 연습에서만큼은 이들도 여느 극단의 배우 못지않다. 그래도 완벽할 수는 없는 법, 대사를 생략하기도 하고, 연극 도중 정적이 이어지기도 한다. 누군가“ 네 차례야!” 지적을 하면“, 아이고 잊어먹었네”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습은 계속 진행됐다.

   
▲ 지난 8일 화정복지관에서는 화정실버공연단의 막바지 연극 연습이 한창이었다. 박동민 감독이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연습이 진행되면서 박동민 감독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진다.‘ 표정에 감정을 실어라’‘, 목소리를 더 크게 해라’ 등 더 나은 연극을 위해 여러 가지 지시를 하는 것이다. 박동민 감독은“ 연극적 재미를 위해 많은 주문을 한다”며 극단에 대한 열정을 표했다.

연극이 끝나고 다음 연습 전 쉬는 시간에도 배우들 사이에서 연극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대사를 치는 뉘앙스부터 무대 진입 타이밍까지, 연극에 대한 언쟁이 나이를 잃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열띠게 벌어진다. 이런 논쟁의 마무리는 결국 배우들의 호탕한 웃음으로 끝난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피곤할 법도 했지만 이날 배우들은 2번의 연습을 모두 소화하면서 다가오는 연극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주연배우를 맡은 배규환(금곡동, 77) 씨는“ 건강과 보람을 함께 준다”며 극단과 연극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고마 다 잘했소!

지난 11일 부산문화회관에 공연을 위해 배우들이 모두 모였다. 2번의 리허설 후 긴장된 표정으로 배우들은 무대에 올랐다. 연습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해결됐는지, 대사를 잊어버리지 않았는지 등 여러 우려와는 달리 연극은 큰 문제없이 끝났다. 오히려 무대에 오르자 더욱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도중에 대사를 잊어먹는 배우가 나오기도 했고 함께 박수를 칠 때 박자가 맞지 않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관객석에는 웃음이 터지고 배우들의 연륜이 묻어나는 애드리브가 발휘됐다. 이러한 실수는 오히려 연극에 인간미를 첨가해 주었다.

모든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연극의 뒷맛을 즐겼다. 배우 김인옥(금곡동, 80) 씨는“ 다 잘해줘서 좋았다”며“ 관객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화정실버공연단은 앞으로도 계속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미 다음 작품의 각본도 나와 있는 상태다. 박동민 감독은 “소재가 다양하고 풍부한 연극을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실버공연단에 맞는 연극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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