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팽창 우주의 특성

 

현대는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시대다. 우리가 현대라고 부르는 시기의 시작이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천문학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가 속해있는 은하계가 무수히 많은 은하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렇게 은하로 이루어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1900년대 초가 현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의 토대가 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수립되었으니 이 시기를 현대 과학의 요람기라고 보는데는 큰 문제가 없겠다.

은하의 발견은 1925년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E. Hubble)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우주가 무수히 많은 은하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이보다 훨씬 전인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칸트 (I. Kant)에 의해 제기되었다. 칸트는 태양계가 성운의 수축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은하계도 훨씬 더 거대한 성운의 수축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칸트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은하수는 우리 은하를 이루는 별들이 원반 구조를 하고 있고, 원반은 회전하는 성운이 수축하면 만들어지는 필연적인 구조이고 이러한 성운의 수축은 우주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기초하여 섬우주 가설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찍이 뉴턴 역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우주관을 변화시킨 ‘팽창우주’의 발견

은하의 발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은하로 이루어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팽창 우주의 발견도 허블에 의해 1929년에 이루어졌다. 허블은 은 하의 스펙트럼을 관측하여 모든 은하들이 우리 은하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멀리 있 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은하의 후퇴 속도를 V(km/s), 은하까지의 거리를 D(Mpc)로 표현하면 V=H·D가 되어 허블 법칙으로 부른다. 여기서 H는 허블상수로서 최근의 관측 결과는 H=73km/sec/Mpc 정도이다.

팽창 우주의 발견은 우리의 우주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우주의 팽창이 발견되기 전에는 우주의 구조나 특성이 변하지 않고 늘 같은 모습으로 정지해 있다고 생각했으며, 우주가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여러 신화와 전설에는 창세기에서처럼 우주 창조의과정을 기술하고 있지만 이는 그냥 이야기일 뿐이지 과학적 근거를 가진 설명은 아니었다. 이와 달리 팽창 우주에서는 우주가 시작된 시점이 언제이며, 어떤 진화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보면 서로 멀어지고 있는 은하들은 과거로 갈수록 더 가까이 있었을 것이고 점점 더 과거로 가면 결국은 모든 물질이 한곳에 모이는 시점이 있기 때문이다.

팽창 우주의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중심이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허블 법칙은 어느 은하에서 관측하더라도 같은 결과를 얻게 되므로 우주가 어느 특정 은하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아니며 우주에 있는 모든 은하의 위치가 대등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행성의 운동이나 별의 일주운동 관측으로부터 추론된 지구중심설은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모든 천체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중심설을 받아들인 서구 사회에서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인간에게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였고 서구의 사상과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주는 이렇게 탄생했다

도움말

◆K (절대온도 측정 단위):
절대 영도에 기초를 둔 온도의 측정단위이다. 절대온도는 물질의 특이성에 의존하지 않는 절대적인 온도를 가리키며 절대온도로 물의 어는점은 273.15K, 끓는점은 373.15K이다.

◆우주배경복사:
특정한 천체가 아니라, 우주공간의 배경을 이루며 모든 방향에서 같은 강도로 들어오는 전파를 뜻한다.

◆암흑물질: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등과 같은 전자기파로도 관측되지 않고 오로지 중력을 통해서만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물질을 말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팽창 우주에서는 물질의 기원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좁은 공간에 모이게 되면 밀도와 온도가 무한히 커지게 되므로 우주의 초기는 무한히 높은 온도와 밀도를 가졌을 것으로 유추할수 있다. 이러한 고온 고압에서의 우주의 시작을 흔히 빅뱅(Big Bang)으로 부르는데,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밀도와 온도가 감소하고, 그 과정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원소가 만들어지게 된다. 통일장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온도가 대단히 높을 때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인 쿼크, 전자, 뉴트리노 등이 만들어지고, 온도가 더 내려가면 쿼크들이 결합하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게 된다. 그 후 온도가 100억K 정도로 내려가면 이들이 결합하여 수소와 헬륨의 핵을 만들게 된다. 이때가 우주가 시작한 지 1초 정도쯤 될 때다.

이렇게 수소와 헬륨 등 우주를 이루는 기본 원소들의 핵이 만들어졌으나 우주의 온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에 전자는 원자핵과 결하하지 못하고 자유전자로 있게 된다. 이렇게 전자가 자유전자로 있을 때는 빛은 자유전자에 의해 산란되어 물질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물질에 묶여있다. 우주의 온도가 3,000K 정도로 내려가면 전자가 원자핵과 결합하여 중성 원자를 만들고, 빛은 물질의 속박을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때 우주의 나이는 약 38만 년 이고, 이 빛이 오늘날 우주배경복사가 관측된다. 따라서 우주배경복사에 담긴 우주의 모습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가장 초기 모습이 된다.

우주의 나이는 몇살일까?

▲ 나사의 우주배경복사 탐사선인 WMAP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사진

빅뱅우주론에서 예측한 우주배경복사는 1964년 미국의 물리학자인 펜지아스(A. Penzias)와 윌슨(R. Wilson)에 의해 전파망원경으로 관측되고 이에 따라 빅뱅우주론이 우주를 기술하는 표준 이론이 되었다. 우주배경복사는 2.73K 정도의 흑체가 방출하는 복사와 거의 완벽하게 같으며, 어느 방향에서나 같은 세기를 가지나 미세한 비등방성을 가지는 것으로 관측되었다. 우주배경복사에 담긴 약간의 비등방성은 빅뱅우주론만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등방성 정도가 1/100,000 정도로 미세한 차이이기 때문에 초기의 우주배경복사 관측에서는 제대로 검출되지 않다가 2001년 발사된 WMAP에 의해 온도 요동이 뚜렷이 관측되었다. 온도의 요동은 곧 밀도의 요동을 뜻하므로 우주배경복사를 방출하는 우주의 밀도가 이 정도의 밀도 요동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밀도 요동은 은하나 은하단 등이 만들어지는 씨앗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일 우주 초기에 이러한 밀도 요동이 없었다면 별이나 은하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밀도 요동의 기원은 우주가 만들어질 때 가지고 있었던 양자 요동이다. 우주의 아주 초기(〜10-37초)에 급팽창 과정이 있었고 이때 양자 요동도 함께 자라 우주배경 복사의 비등방성을 만든 것이다. 우주 초기의 급팽창은 1980년 미국의 물리학자 구쓰(A. Guth)가 제안한 것인데 오랫동안 가설로 남아 있다가 최근 남극에 있는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의 편광 현상이 관측됨으로써 그 존재가 입증되었다.

급팽창을 포함한 빅뱅우주론은 대부분의 관측 사실을 잘 설명할 수 있었으나 우주의 나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우주의 나이 문제란 우리 은하계 안에 있는 천체인 구상성단의 나이가 130억 년 정도인데 허블상수로 구한 우주의 나이는 100억 년이 채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도 1998년 초신성의 관측으로 우주의 가속 팽창이 발견되어 해결되었다.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기 위해서는 중력에 반하는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 우주의 나이가 약 137억 년이 되기 때문에 나이 문제가 사라진다.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가속시키는 이 에너지를 암흑에너지라 부른다.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암흑 물질’

팽창 우주에서 관측된 다른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우주를 이루는 물질 대부분이 빛을 방출하지 않는 암흑물질이라는 점이다. 암흑물질의 존재는 1930년대부터 제기되었으나 그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은하의 회전 곡선이 관측된 1970년대이다. 암흑물질은 빛을 방출하지는 않으나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다. 암흑물질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보통의 물질보다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은하의 생성이나 은하단 또는 초은하단과 같은 거대 구조를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며, 앞에서 설명한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관측에 의하면 가속 팽창하는 우주를 구성하는 것은 70% 정도가 암흑에너지이고 빛을 방출하는 보통 물질이 5%, 나머지는 암흑물질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둘 다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이들의 규명이 팽창하는 우주를 이해하는 핵심 과제이다.

▲ 안홍배(지구과학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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