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지역기여도 수치, 지역경제 순환체제 무너뜨려
고용창출보다 고용감소가 더해 현지법인화 필요하다
▲ 지난해 8월 부산 시민단체들이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앞에서 현지법인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대다수 대형유통업체가 수도권에 법인을 두고 있어 수익의 95% 이상이 서울로 향하고 있다. 지역의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현지법인화가 필수라고 강조한다.(사진=취재원 제공) |
부산의 대형유통업체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외치며 지역 사랑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저조하기만 하다. 대다수 대형유통업체가 수도권에 법인을 두고 있어 수익의 대부분이 수도권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부산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서울로 가져가 버리는 형국이다. 이에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한‘ 대형유통 업체의 현지법인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부산시 대형유통업체의 지역기여도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12개 대형유통 업체의 116개 점포(백화점 7, 대형마트 34, SSM 94)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역업체 물품 매입 비율 △지역은행 활용도 △지방세 납부 실적 △공익사업 참여 등 9개 전항목에서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마저도 실제 수치보다 높다는 지적이 있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훈전 사무국장은“ 대형유통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한 조사이기 때문에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대형유통업체의‘ 빨대’ 부산
▲ <2012년 대형유통기업 지역 기여도> (자료제공=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부산 대형유통업체의 매출은 대부분 서울로 향한다. 대형유통업체의 한해 매출액이 5조원이 넘지만, 95% 이상이 중앙은행에 예치된다. 지역은행에 예치되는 매출액은 5%도 채 되지 않는다. 지역경제의 순환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는 형국이다. 유영명(신라대 경제) 교수는“ 대형유통업체의 행태는 지역에 악영향만 끼칠 뿐”이라며“ 지역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지정하면 지역기업 대출과 금융규모의 확대 등의 선순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업체 물품 매입 비율도 턱없이 낮았다. 서울에 법인을 둔 대형유통기업들의 지역 업체 물품을 매입하는 비율이 향토기업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이훈전 사무국장은“ 부산지역 업체가 생산한 제품들은 경쟁에서 밀려 퇴출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결국 납품할 곳을 찾지 못해 폐업하고 만다”고 전했다.
지방세 납부금은 매출의 1%에도 못 미쳤다. 대부분의 대형유통업체가 서울에 법인을 두고 있어 조세를 서울에 납부하고 있다. 이훈전 사무국장은“ 수도권을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대형유통업체가 들어선 곳은 부산뿐”이라며“ 부산시는 대형유통업체의 빨대와도 같다”고 비판했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이 8할
대형유통업체들은‘ 일자리 창출로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고용 인력의 80%가 비정규직이고, 간접고용 방식으로 인해 저임금의 수당을 받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 센텀시티점 청소 노동자 A(재송동, 61) 씨는“ 주말이면 저임금의 파견 노동자들이 일하러 많이 온다”며“ 그들은 4대 보험 혜택이나 식비도 받지 못한다”고 전했다.
지역 내 대형유통업체가 입점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실직자 수도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06년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센터의‘ 대형유통점 진출이 지역 중소유통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에 따르면 대형유통업체의 신규 출점으로 인한 고용효과보다 전통시장의 고용감소가 더 크다는 것이다. 원종문(남서울대 국제유통) 교수는“ 실제로 대형유통업체가 지역에서 올리는 고용 창출 효과는 미미하다”며“ 대형마트의 입점으로 생업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고려하면 실질 고용 효과는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설명했다.
실효성 없는 규제, 현지법인화 이뤄져야
이러한 대형유통업체의 행태를 규제할 방안은 전무한 실정이다. 부산시는 대형유통업체들을 규제하고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조례를 제정했지만 실효성이 없다. 2009년 제정한‘ 유통업 상생협력과 소상공인 보호 조례’에는‘ 대형유통기업 대해 요청할 수 있다’라고만 명시돼 있을 뿐 이행 강제력은 없다. 부산시 경제정책과 관계자는“ 권고만 가능하다”라며“ 관리 주체가 구청으로 넘어가 시 측에서는 총괄만 할 뿐”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반면 타 지역의 경우 시가 적극적으로 대형유통업체를 견제하고 있다. 대구시는 대형유통점이 입점할 경우, 조례를 통해 △지역금융 이용 △지역업체 제품 매입 20% 이상 △지역민 고용 95% 이상 △영업이익 5% 지역 환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회공헌의 차원에서 대형유통업체의 현지법인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현지법인화한 광주 신세계백화점은 광주연고의 프로농구단 운영과 각종 장학사업 등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대구 현대백화점과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쇼핑몰 또한 대구에 법인을 둬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유영명 교수는“ 지역에서 상당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현지법인화는 필수”라며“ 무엇보다 시민들이 소비자 주권을 가지고 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