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천의학대학교 뇌과학연구소 조장희 소장

원 중앙에 구멍이 뚫린 도넛 모양의 기기 속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으면, 붉은색 줄이 환자의 몸을 훑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환자의 질문,“ 제 몸에 무슨 이상이 있나요?” 한 번도 궁금해 한 적이 없는가. 저 동그란 기기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잘라보지도 않고 우리 몸속을 들여다보는 것일까.

병원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이러한 장치는 자기공명장치(이하 MRI)라고 불리는 인체영상기기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인체영상기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조장희 박사가 있다. 그는 컴퓨터 단층촬영(이하 CT)의 수학적 기법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양전자 방출 단층장치(이하 PET)를 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CT와 MRI가 보편화돼있으나 그가 개발한 PET는 전 세계에서 암의 조기진단과 치료에 획기적 기여를 하고 있다.

온갖 뇌 사진으로 둘러싸인 가천의학대학교 뇌과학연구소는 별이 만발한 우주공간을 연상시켰다. 이와 유사하게 꾸며진 조장희 박사의 연구실에서 그의 연구인생과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체영상기기의‘ 삼총사’라 불리는 CT, PET, MRI의 차이점이 궁금하다

엑스레이의 발명은 의학·과학을 넘어 인류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들어서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했는데, 과학자들은 엑스레이를 컴퓨터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1972년에 알란 코맥, 하운스 필드 두 과학자가 엑스레이와 컴퓨터의 성격을 합쳐 개발한 것이 CT다. 지금까지는 투과만 했다면 자른 단면을 보려는 시도가 이뤄진 것이다.

아주 우연하게도, 나는 영상기기 분야가 과학계의 화두로 등장했을 때 연구를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대학 UCLA에서 부교수로 부임했을 당시 CT가 등장했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흥미가 생겨 공부에 돌입했는데, 당시 베일에 싸여있던 CT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었다. 이를 응용해 만든 것이 PET다. CT는 인체구조만 볼 수 있다면, PET는 양전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뇌 속의 화학물질들의 변화까지 관찰이 가능하다. 가령, 정신이상자의 뇌 속에 어떤 물질이 얼마나 부족한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MRI는 자기장을 발생하는 커다란 자석통에서 고주파를 발생시켜 돌아오는 신호의 차이를 영상화하는 장치다. 현재 이 세 가지 기기가 인체 영상기기의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PET가 최초로 개발된 후 상용화될 때까지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PET가 사용되기 위해서는‘ 핵검출기’가 필요하다. 1975년에 PET가 개발됐을 때 처음 64개의 핵검출기를 사용했다. 이후 2,000개를 사용했고, 현재는 12만 개를 사용한다. 핵검출기의 개수가 늘어나는데 30년이 걸렸다. 당시 필요 없다거나 쓸모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많은 학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됐고, 현재는 신경과학의 핵심적인 기기로 자리잡았다.

스무 살 조장희는 그야말로‘ 열혈청년’이었다. 재밌는 점은 그가 관심을 쏟았던 것이 영상기기도, 뇌과학 연구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대학에 입학한 뒤 등산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과 암벽엔 거의 다 올라봤고, 친구들에게‘ 암벽 등산 도사’로 통했다. 뿐만 아니라 스키를 타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그를 주축으로 국군에는 최초의 스키부대가 창설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를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자유로운 시기라고 회상했다. 그의 눈빛에서 확실히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대상이 등산이든, 스키든 완전히 몰입하고 만다는 사실이었다.

△대학 시절 등산을 즐겼던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 때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성적도 낮았다. 얼마나 심각했으면, 세월이 흘러 콜롬비아 대학교수가 됐을 때 환영회에서 한 농담이 아직도 기억난다“. 여기 대학원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성적이 나빠서 안받아주더라. 그래서 내가 교수로 왔다”고 말이다(웃음).

등산은 가시적인 경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좋아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니가 95점이다, 내가 100점이다’ 말하며 따질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경쟁이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라기보다 자신과의 경쟁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등산의 매력은 학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학문적 성과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30년이 지난 후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일생을 걸고 도전하는 것이다. 충분히 매력 있지 않나.

△화려한 시절(?)을 뒤로한 채 학업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있나

3학년 2학기부터 1년 반 동안 학적 보유병(학보병) 신분으로 군대에 갔다. 복학하니 함께 등산 다니던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이전에는 숙제할 때 베껴 쓰기만 했는데 친구들이 없으니 스스로 공부해서  숙제를 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생각보다 재밌는 것이다. 공부가 재미있는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 4학년 때는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그때 생긴 학업에 대한 흥미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조 박사는 10여 년 넘게 다른 나라에서 연구 생활을 하며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를 접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대학의 연구 환경이었다. 가령, 그가 박사과정을 밟았던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는 소수의 정교수만 연구를 진행하고, 부교수가 강의를 전담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 이는 연구와 교육을 한 교수가 병행하는 우리나라 대학과는 차이가 크다. 조 박사는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 환경이 바로 잡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 환경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 대학은 잘못된 부분이 많다. 대학은 본래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연구를 하는 곳이다. 뉴턴이 생존하던 시절만 해도 학생들은 교수의 조수로서 활동했고, 교수를 사사(師事)했다. 심부름 등 잡일을 하면서 교수 곁에서 그 교수의 행동을 배워가는 과정이 있었다. 대학의 본래 모습은 지금의 대학원과 가깝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칠판 또한 본래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교수들이 토론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발달하면서 학생이 늘어났고, 대학에서 조직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후진국일 당시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 대학을 거의 교육하는 곳으로만 활용했는데, 우리나라 대학은 당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본다. 대학은 학자가 모이는 곳이고, 학생은 조수로 활동하는 곳이나, 최근에는 잘 이뤄지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나라 대학의 정원만 살펴봐도 차이를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대학생 수보다 대학원생의 수가 훨씬 많다. 대학생이 5~600명이면 대학원생은 3,000명에 이르기도 한다.

△지금까지 고수해온 연구에 대한 철학이 있나

딱히 목표를 세우고 추진해온 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게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마련이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하나 지켜온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진정한 연구라고 생각한다.

교수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원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없지만 대학은 다르다. 일생을 대학에서 보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상당히 큰 특권이다.

△실적을 중요시하는 최근 정책 때문에 교수가 원하는 연구를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업적을 많이 내는 교수가 승급이 빠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업적을 평가하는 방법이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된다. 미국은 3년씩 논문이 나오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5년 뒤 더 중요하고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나라와 대학마다 학문적 전통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는 대학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조장희 박사는 현재 가천의학대학교의 석학교수 겸 뇌과학연구소장이며, MRI와 PET의 영상을 결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 박사는 자신의 연구실 벽에 걸려있는 액자들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을 것이면 이것들이 잘 나와야 한다’며 웃었다. 가장 초기 PET의 모습부터 현재 개발 중인 14테슬라(자기장의 단위) MRI의 모습까지 그의 연구 인생이 펼쳐져 있었다.

△인체영상기기 전문가를 넘어 ‘뇌과학자’로서도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처음 관심 있는 부분은 그저 기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응용하는 것은 의학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체영상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하다 보니 뇌과학에도 흥미가 생겼다. 쌀장사하다 떡장사를 하게 되는 식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연구 분야를 확장하게 됐다. 오히려 기기를 연구하고 개발한 입장이니 활용 메커니즘을 잘 알 수 있었고, 학문적으로 경쟁력이 있었다. 의학만 배운 사람은 영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 채 결과만 수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최근 신체의 생리적 구조에 의한 질병보다 정신적 질병이 증가하고 있다. 정신병적 차원에서 뇌과학은 왜 중요하나

이전까지는 뇌 속 신경 다발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잘 몰랐다. 사람이 즐거워하고 우울해하는 신체적 메커니즘을 잘 몰랐던 것이다. 인체영상기기가 발달하면서 신경다발들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어떤 신경다발을 건드리면 울고, 어떤 다발을 건드리면 웃는지 알 수 있다. 최근 전극을 머릿속에 통과시켜 뇌신경을 건드리는 DBS 기술이 개발됐고, 발달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잘 이용하면 약물로 듣지 않는 정신적 질병을 물리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살을 방지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은 연구용으로 극히 일부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PET, MRI 등을 뛰어넘은 새로운 원리의 인체 촬영기기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나

있으면 지금 내가 손 놓고 가만히 있을리가 있나(웃음). 그 가능성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직 결과가 없다. 뚜렷한 결과가 나와야 이에 대한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

쉴 새 없이 연구 경력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이란 예상과는 다르게, 그가 인터뷰 도중 가장 많이 한 말은“ 아 뭐, 그냥 했어요”였다. 자부심과 사명감에 대해 물었던 기자의 입이 무안해지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오랫동안 그를 주변에서 지켜본 사람은 그를 정반대로 평가했다‘. 악착같았다’는 것이다. 9년여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조장희 박사의 제자로 연구 활동을 했던 김재호(전자전기공) 교수는“ 조장희 박사는 어떤 분야에 도전하면 올인하는 성향이었고, 제자들은 그러한 조 박사의 성격까지 닮아갔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연구는 삶이자 생활이었으니‘, 그냥’이라는 단어가 자꾸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고 보니 참 필요한 것이었다’며 웃어 보이는 조장희 박사. 그에게‘ 과학자’라는 단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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