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본질과 사명을 말하기에도 지쳤다. 하지만 다시 이 자리를 빌려 대학의 존립 요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삶의 주체로 우뚝 설 때이다. 그 주체적 인간을 양성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일상윤리나 태도를 가르치는 것을 소학(小學)이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대학(大學)은 제 몸을 도덕적으로 함양하는 데서부터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까지, 그 교육의 스케일은 막대하고 막중하다. 우리가 굳이‘ 대학교’란 이름을 내걸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자본의 탐욕은 놀라울 정도인데, 대학을 취업준비소로 전락시킨 것이 그 명증이다. 한번 도서관을 가보라. 대학생들이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를! 사회적 진출 준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사회의 민주와 개인의 자존을 위하여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따져본다면 너무 억울할  정도다. 대학의 비전이나 교수의 가르침보다 기업이나 인사담당자의 자본 논리가 앞서는 사회, 비정상도 이런 비정상은 없으리라. 그래, 이곳이 자본사회이니 자본의 지배를 인정하자. 그렇다고 우리의 자존까지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대학을 반자본의 기지로 만들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와 자존을 가질 수 있도록 대학구성원은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저 옛날, 서원에서 과거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서원구성원들은 나라에, 향촌에 유사(有事)가 있으면 어김없이 직언하고 행동하지 않았던가? 대학은 대학다울때, 사회도 대학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는 대학구성원들이 지킬 수밖에 없다. 자기 집을 기업에, 자본에 내주고, 비인간화된 윤리에 항복하고서, 나를, 내 존재를 알아달라고 외쳐봐야 아무 소용없다.

부산대학교는 지난 날 군사독재를 무너뜨렸던 시월항쟁의 시발점이었다. 지금은 작은 석비만이 그 자리에 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수십 년 독재정치를 흔드는 함성이 울렸었다. 어쩌면 오늘, 우리는 부산대가 23년간 지켜온 민주제도의 상징, 총장직선제의 사수를 위해 피어린 목울음을 다시 토해야 할지 모른다. 그동안 잠시의 평안한 민주의 온풍에 우리의 야성은 마비되었고, 자본의 학원 침탈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이른바‘ 시대를 창조하는 동력’은 멀리 있지 않다. 고담준론과 정치적 타협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바로 우리 곁의 작은 문제 하나하나에 민주의 원칙을  지켜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다. 자, 이제 당면한 우리가 지켜야할 일상의 민주원칙을 재확인하자. 첫째, 총장직선제의 당위성을 민주대원칙 아래에 선전하자. 둘째, 외롭게 원칙을 지켜가고자 하는 철학과를 격려하자. 셋째, 대학구성원은 누구보다 도덕적으로 당당하도록 자신을 가다듬자. 넷째, 앞으로 지금보다 더 절약하고, 비자본적으로 사는 법을 강구하자.

대학본부는 3월 31일을 기해 총장직선제 폐지를 공포했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쇠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었던 옛사람의 마음을 거울삼아 차근하게, 강하게, 큰 걸음으로 가자.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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