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국내에서 최고의 소설 판매고를 올렸으며, 한국만이 아니라 서른 곳 이상의 국가에서 출판되기도 하였다. 대중 독자들이 이렇게 <엄마를 부탁해>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우리 삶의 가장 취약한 자리를 대변하는 엄마를 소재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슬픔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엄마라는 상처 입은 존재를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정서적 기반은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의 미안함과 죄책감이다. 엄마의 실종 이후, 그녀에 대한 기억이 쓰나미처럼 밀려오지만 정작 남편과 자식들은 엄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여기에서 엄마를 향한 슬픔은 더욱 증폭된다.‘ 박소녀’라는 엄마의 이름과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엄마는 자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강하고 힘센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가장 구실을 못하는 아빠 대신, 엄마는 자신의 삶을 희생함으로써 가족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삶을 살아온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자식들이 모두 모여 사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의 서술자는 너희가 어떻게‘ 그런 엄마를 잃어버릴 수 있니!’라고 질책하듯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이 작품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너(큰딸)’, 2장에서는‘ 그(큰아들)’, 3장에서는‘ 당신(남편)’을 소설 내부의 다른 서술자가 질책하고 나무라듯이 심문한다. 쉽게 말해, 1장부터 3장까지 자식들과 남편이 서술자에게 혼이 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4장에서 이야기의 화자가 엄마로 전환된다. 화자가 된 엄마는 3장까지 서술자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있던 자식들과 남편을 다시 한 번 구원한다. 엄마는 나는 이제 갈 것이니, 더 이상 미안해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말한다. 서술자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가족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와 같이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모성을 소재화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실종되고 난 이후 자식들과 남편이 겪어야 할 슬픔까지도 포용하는 기막힌 감동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어찌 4장에 이르러 독자들이 뜨거운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엄마의 기적과 같은 모성에 감동하거나, 그 슬픔을 치유의 눈물로 해소해버리는 것으로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런 엄마의 희생이 아름다운 모성이라고 말하면 모성은 신비화된다. 모성의 모습은 다양하다. 모성이 희생과 헌신으로 이상화되면 우리의 엄마(들)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상실하게 된다. 엄마, 아니 가족 구성원 중 누구에게라도 희생을 요구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엄마의 희생과 헌신이 커질수록 자식들과 남편의 심적 부채감은 더 커진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성립되는 가족 관계는 행복한 가족을 구성하는 길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족 구성은 각자에게 부과되는 마음의 빚으로부터 자립을 선언하는데서 다시 출발하여야 한다. 오늘 저녁, 엄마 혹은 아내 대신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것이 바로 그 작은 실천이 될 것이다. 더불어, 그것은 공감으로서의 소설 읽기에서 영감으로의 소설 읽기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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