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일당 5억원 황제 노역’ 판결이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법원의‘ 향판제(鄕判制)’, 즉 지역 법관제(순환근무 없이 특정 지방관할법원에서 계속 근무) 개선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사건의 1, 2심 재판장이 모두 향판으로 그룹 관계자들의 변호사 상당수가 향판출신 전관이었기 때문이다. 이 향판제는 지역 사정에 밝은 해당 지역 출신 법관들이 재판을 함으로써 판결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등의 좋은 취지에 따라 도입되었지만, 그 제도의 오용(誤用)으로 지역 인사들과의 유착설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 이와 유사한 제도로 효렴(孝廉)제가 있다.

<한서(漢書)>‘ 武帝紀’를 보면, 한대(漢代)의 효렴(孝廉)제도는‘ 향리에서 부모를 잘 섬기고 청렴한 사람을 천거하여 벼슬에 나아가게 했던 법’이다. 이는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과 효제(孝悌)를 바탕으로 동중서(董仲舒)가 건의하여, 유가사상의 행동원리에서 나온 제도다. <염철론(鹽鐵論)> 산부족(散不足)편을 보면,“ 요즈음 부모가 살아있을 때에는 사랑과 공경을 보이지 않다가,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돈을 써가며 부모를 높이고 있다.

진실로 슬퍼하는 마음이 없으면서도 부모를 후장하고 많은 돈을 쓰게 되면 효자로 칭해진다. 그리하여 이름이 유명해지고, 사람들 사이에 명예가 드러나게 된다. 이 때문에 일반인조차 이러한 관습을 모방하여 집과 재산을 팔아 이를 행하려고 한다”고 했다. 또, 한대(漢代) 사당(祠堂)의 유물 중에 하나의 예를 들면, 1980년 산동성 가상현 송산에서 출토된 157년 안국사(安國祠)의 명문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들은 재산을 모두 쓰면서 사당을 짓기 위해 유명한 건축가를 고용하였다” 이 사당에는 2만 7,000전(錢)이 들었는데, 이 돈은 만호(万戶)정도 현(縣)의 현령(縣令)의 3, 4년간 봉급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무덤에서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제사가 행해졌고, 대규모 사회모임이 이루어졌다. 황실능묘는 조정의 정치적· 종교적인 본부가 되었고, 일반인들은 가족묘지에서 연회나 음악회 혹은 미술전시회를 열었던 것이다. 이처럼 효렴제도는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너도나도 관리로 임용되는 추천을 받기위해 후장(厚葬)을 선호하는 풍조를 확산시키는 폐단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왕충(王充)의 <논형>은 당시에는 이단(異端)으로 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효렴제도의 폐단을 통해 우리는 제도의 운용에 사리사욕(私利私慾)이 개입하게 되면, 제도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부정과 부패의 폐단을 만든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향판제 뿐만 아니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등 최근 우리 사회에는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있다. 말 그대로 뜨거워 만지기가 힘들지만, 개선하지 않으면 더 많은 문제를 낳고 사회를 후퇴시키기 마련이다. 고대 중국의 실수를 오늘날 다시 재현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과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교훈이자, E.H Carr가 말했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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