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철욱(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평소 일상생활을 하면서 무심히 스쳐 가는‘ 여기’가 얼마나 의미 있는 장소인지를 생각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훈장을 얻은 건물이 앞을 가로막아 그동안 익숙했던‘ 여기’가 한 순간 낯선 공간으로 변하고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세력들 간의 치열한 각축장이다. 도심 재생과 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자주 듣게 되는 단어가‘ 지역정체성’과 이를 활용한 관광자원화이다. 즉 지역정체성이 관광객들에게 팔아서 수익을 얻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부산시에서 몇 년간 추진해 온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이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까지 방문할 정도여서 성공한 프로젝트라는 성적표도 받아들었다. 산이 많은 부산의 자연환경과 식민지시대 한국전쟁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부산에 모여든 사람들의 삶터가 된 산복도로는 부산의 지역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지역정체성을 만드는 지역민들과 사업의 관계를 살펴보는 순간 진정성은 의심받게 된다.

지역정체성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민들이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경계 내의 지역민들이 동질성, 즉‘ 같음’만이 아니라‘ 차이’를 포함하면서 구성한다. 따라서 지역정체성이란 고유한 어떤 무엇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역민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성질이다. 지역민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개념어를 되씹어 볼수록 분명해진다. 지역정체성은 국가나 자본에 의한 정체성의 정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자본은 지역정체성을 문화로 포장한 채 지역민을 현혹하고 소외시킨다. 이러한 근거는 최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오페라하우스 건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호주 시드니의 해안가에 자리 잡은 오페라하우스는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 세계적 명물이다. 시드니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부산에서도 이것이 새로운 지역정체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에 빠질만하다. 정책 결정과 홍보는 지역민들을 고급문화의 향유와 삶의 질 향상으로 인도한다. 그런데 정신차리고 조그만 생각해 보면 오페라가 부산 사람에게 얼마나 익숙한 문화일까. 낯설지 않을까. 낯설고 불편한 것이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결정은 토론하고 싸우면서 익숙한 문화로 만들 과정을 생략하고 몇 차례의 공청회로 끝낼 생각이다. 지역민의 권리는 행정당국의 정책집행에 필요한 하나의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한번 뺏긴 권리의 회복은 쉽지 않다. 선거권을 가지고 위협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소외된 권리는 주인의 손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소외된 시간이 너무 길이 이제는 무관심의 단계에 와 있다. 권력을 가진자와 자본은 지역민이 무관심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여기’에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이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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