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쓰지 않는 이들이 모여 인터넷에 까페를 꾸렸다. 이기(利器)를 거부하는 자신들의 사연, 고충과 격려 따위를 꾸준히 주고 받다가‘ 정모’까지 열게 됐다. 몇몇이 그 모임에 참가를 신청했고 회비를 거둬 장소를 물색하다 펜션 한 동을 빌리기로 했다. 숙소 주인은 예약자의 연락처를 물었고 일처리를 맡은 이는 집전화 번호를 대며 휴대폰이 없다고 말했다. 주인은 거듭 다른 이의 휴대폰 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했고, 예약을 맡은 이는 거기 가려는 우리 모두가 휴대폰을 쓰지 않는 이들이라 연락처는 집과 직장 번호뿐이라고 답했다. 뜨악해하던 주인은 미심쩍은 목소리로 몇 번 더 되묻다가 결국 예약을 거절했다고 한다. 오래전 일이다.

29일로 국내에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된지 30년을 맞았고, 절멸된 원시부족마냥 이제 그런 이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전체 수출 비중의 30%는 정보통신기술 산업, 전 세계 휴대전화 10대 중 4대는 한국산이라는 보도가 앞다퉈 들려온다. 그들이 거부했던‘ PCS폰’ 내지‘ 셀룰러폰’ 또한 사어(死語)로 사라지고‘ 스마트폰’ 혹은‘ 애플리케이션’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하루 동안 이동통신사가 지상파 방송에 내보내는 광고 시간이 영화 한 편의 러닝 타임에 육박하는 89분,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약 66분에 달하는 세상에서 공중전화는 소리 소문 없이 철거되고, 부산대학교 앞은 휴대폰 매장으로‘ 특화 거리’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통신’의 범주를 넘어서“ 이동통신 기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거나 안되는 시절”을 예견한다. 휴대폰에 대한 거부가 특이한 취향 수준이 아니라 ‘생존’과 연결될 기미는 뚜렷하다.

휴대폰으로 전송되는‘ 인증번호’를 통해야만 가능한 인터넷 서비스나 행정·금융 등 개개인의 삶과 직결되는 분야에서 문자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보편화된 방식이다. 더불어 스마트폰이 대세를 이룬 이래 급증한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대부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용됐다는 분석은 이제 휴대폰이 없는한, 온라인에서건 현실 세계에서건 무적자(無籍者) 신분을 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요컨대 한국에서 휴대폰은 필수불가결의 멤버쉽이자 또 하나의 주민등록번호가 된 셈이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돌아볼 여유따윈 없다. 이 유난한 휴대폰 사회에‘ 소속’되기 위하여 기꺼이 휴대폰에‘ 종속’된다.

상상할 수 없었던 스마트폰의‘ 편리’를 되물리지 못한 채, 편리 이전의 삶을 완전히 소급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시스템 구축에 불어난 통신비로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고독이 두려워 중독에 빠져드는 아이러니엔 유약한 인류의 그림자라도 어른거리지만, 오늘 우리가 소속을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 종속을 바치는 대상이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라는 사실은 불길하고도 부자연스럽다. 정희진은 이를“ 가장 기본적인 시민권이라 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주민으로서 등록이 통신사의 회원권으로 대체된 것”이라면서 “‘우리’가 만든 새로운 통치 체제”라고 갈파했다 ‘( 휴대전화와 시민권’, <계간 우리교육> 2013 여름호).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일제히’ 하릴없이 스마트폰 광고를‘ 경청하는’ 시간을 기이할 정도로 무감하게 지나는 중이다. 바야흐로 저항할 생각조차 잃게 만드는 스마트한 시대가 도래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