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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인 것에 대한 단편들] (4)
  • 윤인로 문학평론가
  • 승인 2014.03.31 21:36
  • 호수 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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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분란을 전시하는 여기의 양당제, 그러니까 서로에게 결코 치명적이지 않은 세 치 혀를 영원히 뒤섞음으로써 번갈아 해쳐먹는 오늘의 과두정(寡頭政, oligarchy). 남한의 이 장구한‘ 수다’의 정치체를 변혁하는 것이 판판히 관리권력의 증강으로 귀결되고 있(었)음을 번번이 목격하면서도, 사민주의적 구체제에 근거한 대의제의 쇄신만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진보의 입론이라고 강변하는 이들을 본다. 그것은 힘(Gewalt)의 독점욕이며, 독점된 힘을 향한 독재적 의지이다. 힘들의 형태, 힘들의 경향을 자신의 형틀 안으로 모조리 환수하고 몰수하는 존재-신-론적인 진보, 그 벌겋게 발기한 진보를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저울에 달고 재고 째야한다(<다니엘>, 5: 25~28). 제도와 사건, 조직과 봉기, 제정된 권력과 제헌하는 권력의 ‘관계’를, 그 둘 간의 상호 삼투, 결속, 간섭, 길항, 상쇄의 관계를 사고하지 못하는 저들의 이론적 폐쇄회로가 그처럼 벌겋게-벌떡-빳빳하게 발기해 있는 자기들 자지의 재현이자 외화임을, 그렇게 군림하는 자지의 양식 속에서 제도론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고 있음을 공박해야 한다. 최종적이고 중단적인 시간의 상황성에 대한 논구, 이른바 메시아적인 것에 대한 구상력 일반을“ 사변적인 정치학”(진태원)으로 싸잡아 사정하고 싸버리는 자지들의 제정권력 우위론(조직 결정론)을 완파시켜야 한다.

윤인로 문학평론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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