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 섹스칼럼니스트

“사랑하니까 한 번만 하자.” 20대 초반의 서툴고 성급하기만 한 남자를 만나고 있다면 한 번 은 듣게 되는 어이없는 말. (20대 중반 넘은 남자가 이런 표현을 쓰며 당신에게 섹스를 제안한다면 그 순간 바로 당신의 인생에서 아웃시켜라. 재고할 여지도 없다.) 혈기왕성하게 단단해진 간절함은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경박한 표현만큼은 예쁘게 봐주기가 힘들다.

그 또래의 여자가 섹스를 유예하고 있다면 미지의 경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섹스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남자가 이전에 자신에게 보여줬던 관심과 정성과 애정을 거둬들이진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헤아려주고 안심시켜주지는 못할망정 조르고 칭얼거리며‘ 한번만’이라고 애원하는 꼴은 우습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자근거리는 꼴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채는 걸 매번 거절하는 것도 귀찮고 피곤해서 그 한 번을 허락하고 말았다는 사례는 늘 존재해 왔다. 그렇다보니 여전히 그런 식의 몹쓸 발언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라도 단호해지자. 한 번만 하자니. 진짜 웃기지 않은가. 그 말을 뱉는 남자의 진짜 속내는‘ 사랑하니까’ 라는 단서에 방점이 찍혀있지 않다. 호기심과 욕구해소 이상의 어떤 감정도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남자들에게는 이성을 대할 때 호기심이라는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지만 그 호기심이라는 것도 사실 뭐 특별한 게 아니다. 새로운, 알지 못했던, 선호 범주에 들어가는 못생기진 않은 여자 사람이기만 하면 충족되는 조건이다.

물론 남자들도 알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사람과 섹스를 하든. 어떠한 교감도 없이 욕구에만 충실했던 순간이 지나고 나면 허무하다는 사실을. 다만 아랫도리가 뻐근해져오는 그 순간부터 마치 마따따비나 캣닢에 취한 고양이처럼 제정신이 아닐 뿐이다. 그 기분의 유통기한은 결국 몇 번 자고 나면 사라지고 마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 자신이 왜 섹스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어떠한 고민도 해보지 않고 동물적 욕구에만 충실하다보니 섹스가 끝난 뒤 찰나에 스쳐가는 현자타임과 함께 섹스의 무상함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내 여자를 안고 싶고 만지고 싶어진다. 그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히 빠져든 남자는 성적 충동에 괴로움을 느끼고 힘든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저런 경망스러운 말로 섹스를 청하지 않는다.

남자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여자가 자신의 사랑을 느끼게 만든다. 적어도 그 정도의 노력을 하는 남자라면 여자도 당연하게 그 남자의 몸을 탐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아직 경험이 없어 주저함이 큰 상황이라면 그러한 욕구가 뛰어오르기엔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랑’이라는 말만 붙이면 여자들이 넘어간다고 믿는 미숙하고 제멋대로인 남자들만이 그렇게 말한다. 노련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여자들만 고스란히 상처를 받는다. 이건 악순환의 반복이다. 여자의 첫경험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도시괴담 같은 멍청한 일은 그만 두도록 하자.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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