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1월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된 <메퀴에르>지에는 라 뽀르뜨라는 한 서적 편집인의 부음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고인이 서적 편찬 작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번 것과, 그렇게 함으로써 재능 없는 젊은 문인들이 인간을 위한 지식 증진에는 관심도 없이 돈만 좇도록 부추겼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당시 다른 문인들도 비난에 동조했다. 서적 편집이란 사익을 위해 남의 글을 도용해서 짜깁기하는 사기 행각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책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쓸데없이 책방의 서가만 채우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라 뽀르뜨는 서적 편집인이라는 직업이 흔하지 않던 당시 사회에서 드물게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52권에 달하는 책을 편찬했으며, 분야도 문학, 철학, 종교, 음악, 정치학, 미술, 역사, 여행기 등 모든 지적 영역을 망라하고 있다. 그는 당시 계몽사상가들과 문인들이 쓴 어려운 내용의 글들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단순화하여 책을 내기도 했고, 특정 독자층의 흥미나 수요를 겨냥해 여러 책에서 글을 뽑아 묶어 책을 내기도 했다. 몽테스큐의‘ 법의 정신’과 같은 어려운 책을 대중화한 라 뽀르뜨의 책은 아주 잘 팔렸고, 여러 책에서 발췌한 설교 준비용 책, 여행 안내서들도 독자들에게 인기 있었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당시 파리의 지식인 사회가 지식의 대중화와 보급에 기여한 라뽀르뜨에게 쏟아부은 비난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우리가 가진 지적 재산권의 개념으로 라 뽀르뜨가 남의 글들을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허락 없이 썼던 것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1760년대 파리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에 대한 비난이 어떤 의미인지 드러난다.

라 뽀르뜨가 활동했던 1760년대 전후는 프랑스 파리에서 이제 막 출판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교육받은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을 중심으로 교양인 독자층이 생겨났다. 이전까지 왕실의 후원을 받아 궁정의 요구에 따라 작품을 썼던 작가들은 이제 지식과 세계관을 독점하던 권력에서 해방되어 자신들의 생각을 글로 써 독자들에게 내놓을 수 있었다. 대중 독자들은 자신들이 공감하는 작가의 책을 삼으로써 그들의 후원자가 되는 셈이었다. 지식의 소유, 생산, 보급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보고 진지하게 사유하는 계몽사상가들이 등장했고, 볼테르, 루소 등 문필가들은 낡은 가치관을 버리고 당시 프랑스 신분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글을 썼다. 이들에게 지식이란 세상을 바꾸는 힘이었고, 글을 쓴다는 것은 온 힘을 다해서 세계의 진리를 구하는 것이며 권력의 박해를 무릅쓰고라도 인간의 삶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었다. 이런 진지한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면 라 뽀르뜨는 사욕을 위해 다른 사람이 생산한 지식을독자들의 가벼운 흥미에 맞춰 가공해서 판 장사꾼이었던 것이다. 부음 기사는 문제가 많은 불평등한 신분사회에서 지식인의 사명을 환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음 기사의 날카로운 독설은 인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보인다.

이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지식을 탐구하는 진지함은 찾을 수 없고, 출판시장에서 상업주의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돼 버린 지금 잠시 멈춰 서서 세상을 구할 지식은 어디서 나올 것인지 생각해 본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