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노예 12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캡틴 필립스>, 그리고 <변호인>.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현재 상영 중인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목록에 생뚱맞게도 <변호인>이 덧붙었지만,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그렇다, 이 영화들은 모두 실화에 토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연찮게도 최근에 본 영화들이 죄다 실화와 관련되어 있었다. 대개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로 개봉된 미국영화들이니 그리 의외의 일은 아니다. 그간의 방향을 보건대 감동코드로 최적화되어 있는 아카데미에서 실화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는 언제나 선호되어 왔다. 그들의 정치적 올바름에 적절히 부응하는 대중 친화적인 영웅 서사이기 때문이다. 일말의 냉소도 없이 필자는 그 영화들(의의도)을 존중하지만, 그 압도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는 편이다. 말하자면 이런 의문들. 감동은 영화에서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인가? 실화는 허구의 이야기보다 더 현실적인가? 그래서 픽션보다 우리의 삶에 더 밀착되어 있는가? 우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전제에 너무 자주 무장해제 되진 않는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될 때 나오는 이 자막은 노골적인 암시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이제부터 매우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로 있었던 일입니다.”라는 얘기다. 그러고는 에이즈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마초 카우보이가 트랜스젠더와 손잡고 FDA와 투쟁한 이야기(<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되어 생사의 고비를 수차례 넘나든 선장의 이야기(<캡틴 필립스>), 인신매매되어 노예로 12년을 살았던 흑인 음악가의 이야기(<노예 12년>), 자본주의의 꼭짓점에서 바닥까지 경험한 주식사기범의 이야기(<더 울프 오브월 스트리트>)가 펼쳐진다. 여기서 영웅적이지 않은 인물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조던 벨포드뿐이다. 그조차도 금융범죄자를 미화했다는 비난이 따랐으니 실존인물을 다룬다는 것에 따른 보편적 함의를 짐작할 수 있겠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저 깊은 풍자정신은 개인을 넘어 그 인물을 허용했던 당대 미국 사회와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오독하고야만 우리의 세속적 욕망까지도 포괄한다.

실화라는 걸 숨기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변호인>이 그렇다. 이 영화는‘ 이건 픽션’이라는 아무도 믿지 않을 자막으로 시작해서는 실화에서나 사용할 법한 마지막 자막으로 첫 자막이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자백하는 역설에 이른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설명이 필요할까? 픽션이라는 트릭이 절실했던 이유와 이 영화를 천만 대박으로 이끌었던 이유는 동일하다.

아직까지도 필자는 앞서 나열했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냥 이렇게 정리하자. 필자가 올해 본 최고의 영화는 <인사이드 르윈>이었다. 그다지 극적이지 않은 한 인물의 지리멸렬한 삶의 한 자락이 실화를 다룬 영화보다 필자 자신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말해주었다. 영웅적이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이분법적이지도 않은, 실화를 넘어서는 실재 세계가 거기 있었다. 반면 실화가 주는 감동은 자주 우리를 속인다. 나를 실재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인 양, 거짓 위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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