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도는 무얼 하며 먹고사나. 미래의 선택지는 넓으나 취업의 문턱은 좁기만 해 도무지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인문학 덕에 세상을 보는 시야는 넓어졌지만 미래는 캄캄하기만 하다. 주위의 인문학도들은 일찌감치 좁은 길을 비집고 들어간다. 제 살길 찾기 위해 혈안이다. 유유자적 대학생활을 보내던 인문학도들은 커다란 세상의 벽 앞에, 가던 길 되돌아와 남들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사회는 냉정하다.‘ 4대그룹’ 신입사원 채용에서 인문계 합격자 비율이 20%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경쟁률도 이공계에 비해 아홉 배가 넘는다. 모 그룹은 노골적으로‘ 이공계 우대’를 선언했다. 인문학의 가치가 의심받는 것은 지겨울 정도다. 교육학을 전공한다는 모 교수의“ 규모에 따른 차별화를 통해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대학 구조로 개혁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과학의 목적과 가치를 인간적 입장에서 규정하는 인문학은 이미 시장논리에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다.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게 대학의 몫이라며 대학평가에 인문계 취업률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교육부가 비난을 받을 정도다.

‘인문학 힐링’이라며 신나 떠들던 인문학도들도 현실 앞에선 죽을 쑨다.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 내에서도 인문학의 목은 죄이고 있다. 인문학 강의는 줄어만 가고 취업을 위한‘ 실용적’ 강의만이 살아남는다. 지난해 12월 서강대가 추진했던 인문계열 통폐합 정책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거리가 아니다. 이공계 학생은 인문계 학생을‘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인문학이 일부 부유층의 교양강좌로 변질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 2009년 서울대에서 개설한 CEO를 위한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 AFP(Ad Fontes Progress)를 시작으로‘ CEO 인문학’ 강의는 이어지고 있다.‘지지층 확대를 위한 정치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보다, 고가의 수강료로 인문학마저‘ 그들만의 전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욱 크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다. 인간이 살아있는 한 이들의 삶을 다루는 인문학은 사라질 수 없다. 이공계를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대로‘,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온 사회가 기계로 뒤덮이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세상이 올 일은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인문학은 필수 불가결할 수밖에 없다. 비단 학문에만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회의론 속에서도 인문학은 꽃피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인문학이 사라져야 한다는 이들의 담론조차 인문학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가. 이들 덕택에‘ 차별에 찬성하는 사회’를 반대하는 사회학자도, 빈곤 실태에 시선을 쏟아‘ 노인보고서’를 작성한 언론학도들도, ‘우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 의문을 가지는 정신분석학자도 책을 펴낼 수 있다.

거대한 자본주의가 인문학을 짓밟으려 하지만 인문학도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무얼 하든 먹고산다. 그들만의 전유물이 되지도, 사회에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단지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올 뿐이다. 이쯤에서 인문학이라는 밥상에 겨우 숟가락 얹어 본 인문학 생도가 다른 인문학도에게 제안 하나 해본다. 눈치 보지 말고 가던 길, 마저 가보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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