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통해서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트렌디한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다. 쉽게, 그리고 가볍고 재미있게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조금의 재치가 있다면 그곳에서 빛을 발하고 관심을 받기 수월하다. 각자의 드립력을 바탕으로 병신미를 뽐낼 수도 있는 각축장이 된다. 나 역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기반으로 하여 홍보 차원에서 트위터를 운영하며 거침없는 소위‘ 섹드립’의 향연을 펼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오고가던 140자의 글에서 풍기는 담대함과 기지에 관심을 품다가 어떤 계기로 누군가와 연인 사이가 된 적이 있었다. 나보다 어린 친구여서 온라인에 좀 더 익숙했고 카카오톡과 같은 서비스도 잘 활용하여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근황을 알려주고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둘이 함께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일거수일거족을 부처님의 손바닥 안처럼, 손에 쥔 휴대전화로 파악이 가능했다.

나에게 어떤 불안감도 주지 않아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 동안 열심히 데이트를 하고 그의 장점들이 점점 더 사랑스러워지려는 무렵이었다, 평소 그의 기상 시간에 맞춰 카카오톡으로 안부 인사를 보냈다. 20분이 지나도록 응답도 없고 확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라면‘ 아직 자나보다’ 하고 넘어갔을 텐데 무슨 촉의 발동이었는지 그 사람의 트위터에 들어가 보았다. 실시간으로 계속 멘션이 올라오는 그의 타임라인을 보면서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볐다. 나의 메시지는 확인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는 다른 트위터리안과 격앙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따져 묻지는 않았다. 사소한 반응이지만 이로써 그가 내게 느꼈던 뜨거움이 소진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늦게 나의 글을 읽었지만 그는 왜 답을 이제야 하게 되었는지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과 희희낙락거린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관계를 정리했다.

연애를 하면 내가 그 사람의 무조건적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광대역 LTE 시대에 내가 보낸 메시지에 빛의 속도로 즉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적어도‘ 부르면 답한다’라는 기본 원칙이 SNS나 모바일 메신저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믿었다. 연인이라는 특별한 관계로 맺어진 사람이라면 그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어린왕자와 장미꽃이 그러하듯이‘,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은’ 그를 내가 불러서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호명의 문제만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대화에서도 그것은 적용이 된다.

소중한 누군가가 불렀을 때 답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책임(response+ability=responsibility)이다. 고작 문자 하나에도 답할 능력이 없다면, 왜 답할 수 없는지 설명하는게 어렵다면 그 관계는 한 쪽의 이기심이 도를 넘은 것일 뿐이다. 쿨하지 못하게 왜 그러느냐고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내게 연애란‘ 당신이 부르면 나는 답을 합니다’라는 태도이다. 그것은 관계의 기본이다. 물론 이 기본은 살다 보면 꽤 지키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기에 연인 사이라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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