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든 시청자, 뷰어태리어트

흔히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부른다. 텔레비전은 사람 간의 대화를 잠식시키고, 일방적인 정보 제공으로 인간의 주체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매체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SNS를 만나면서‘ 바보상자’가 아닌 대화소재의 창구로 변모하고 있다. 더 이상 시청자는 일방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것이 아닌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이에 부대신문이 SNS가 텔레비전 시청자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 일러스트=신희연

전통적으로 텔레비전은 가장 수동적인 매체로 간주되어 왔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을 빗댄‘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나 의자에 등을 대고 즐기는‘ 린 백 미디어’(leanback media)라는 표현이 이를 반영한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클레이 셔키(Shirky, 2010/2011)가 그동안 미국인의 누적 여가 시간의대부분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사용됐다고 비판하며, 텔레비전의 역할을 초기 산업 시대인 1700년대 런던 시민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달래주던 진 열풍(Gin Craze)에 비유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텔레비전 시청은 사람들의 대인 접촉의 양을 줄여 사람들의 관계적 활동을 감소시키며 사회적 고립을 강화시킨다고 비판을 받아 왔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정치학자 퍼트넘(Putnam, 1995)은 1974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의 종합사회조사(GSS; General Social Survey) 데이터에 근거하여 텔레비전 시청량의 증가가 미국인들의 사회 자본과 시민 참여를 붕괴시키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사람들의 관계적인 활동을 감소시키는 역할만을 수행해 온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대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티치(Tichi, 1991)가 텔레비전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교적 기능을 하는‘ 전자 난로’(electronic hearth)라고 지칭한 것이나 사람들이 자판기나 정수기 앞에 모여 전날 시청한 텔레비전의 내용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행위를 지칭하는‘ 워터쿨러 효과’ (watercoolereffect)라는 표현에서 보듯 텔레비전은 사람들에게 대화 소재를 제공하고 관계적 활동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수행해오기도 하였다. 특히 최근 스마트 TV의 확산과 같은 기술의 발전은 텔레비전의‘ 교류적인’ 기능을 더욱 확대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텔레비전과 동시적 이용이 가능한 다양한 소셜미디어들의 등장은 텔레비전의‘ 소셜화’를 더욱 부추기며 텔레비전 시청자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에서 제기된‘ 뷰어태리어트’(Viewertariat)라는 개념은 텔레비전 시청자의 사회적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개념 중 하나다. 뷰어태리어트란 정치적 이슈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행위자들을 뜻하는 용어로서 시청자(viewer)와 독일어로 무산 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이다. 이 용어는 영국의 정치학자 안스태드와 오로글린(Anstead & O'Loughlin, 2011)이 2009년 10월 영국의 인기 토론 프로그램인 퀘스천 타임(Question Time)에 극우 정당인 영국 국민당(British National Party)의 당수닉 그리핀(Nick Griffin)이 출연하자 방송을 시청하며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을 벌인 시청자들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도움말

◆의견 선도자
의견 선도자는 매스커뮤니케이션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로서, 어떤 집단 내에서 타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강한 영향을 주는 사람을 뜻한다. 매스컴의 영향은 매스 미디어에서 직접 개개인에게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의견 선도자를 거쳐 개개인에게 전달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의사 공동
의사 공동이란 타인에게 자신이 소비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소비형태를 뜻한다. 매스 미디어 수용자가 SNS를 이용해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행태도 이에 포함된다.

◆리좀(Rhyzome)
들뢰즈와 가타리(Gilles Deleuze et Felix Guattari)의 저서 <천의 고원>의 입문적 표제어로서 제시된 개념이다. 리좀이란 뿌리줄기를 의미하는데 뿌리 줄기 식물은 중앙으로 집중되지 않고, 서로 엮이지 않으면서 각자가 중심이 된다. 사회학에서의 리좀은 동적인 네트
워크로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링크들을 이룸으로써 뻗어 나가는 역동적 과정을 뜻한다.

매스미디어와 여론의 관계에 있어서 뷰어태리어트 집단의 등장은 전통적으로 매스미디어와 대인적 연결망을 매개하는 중요한 행위자로 간주되어온 의견 선도자(opinionleader) 집단과의 비교를 필요로 한다. 첫째, 이들은 기존의 의견 선도자 집단과 달리 특정한 사안에 대해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인다. 전통적인 매스미디어 환경에서 의견 선도자들의 의견이 유포되기 위해 일정한 시간 간격이 필요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둘째, 기존의 의견 선도자 집단이 높은 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위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과 달리 이들은 비균질적 다수의 특성을 지닌다. 셋째, SNS의 특성상 뷰어태리어트 간에는 영향을 주는 자와 영향을 받는 자의경계가 모호하고 구분이 절대적이지 않다. 넷째, 뷰어태리어트는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이슈에 대해 단순히 능동적인 해석을 하는 것을 넘어 이슈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해석 집단이자 동시에 행위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들이 더 이상 비인격화된 익명의 대중이 아닌‘ 중요한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있어서는 뷰어태리어트 집단의 등장을 담론과 대화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플루서(Flusser, 1996/2001)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담론적 커뮤니케이션 형식과 대화적 커뮤니케이션 형식으로 구분한 바 있다. 담론적 커뮤니케이션이란 정보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여러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소통 행위를 의미하며, 대화적 커뮤니케이션은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합성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플루서에 따르면, 매스미디어가 주도한 대중사회는 대화보다는 담론이 중심을 차지해온 시대였다. 그러나 뷰어태리어트 집단의 등장은 매스미디어가 배포하는 담론과 시청자의 대화적 커뮤니케이션이 실시간으로 만나며 상호작용할 가능성을 열어나가고 있다. 맥락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최근 저널리즘의 역할을 사람들에게 대화의 자원을 공급하고 대화의 과정과 결과를 매개하는 것에서 찾고 있는‘ 대화 저널리즘’에 관한 논의 역시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연구의 측면에서 보면 뷰어태리어트 집단의 등장은 서로 다른 미디어 계보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구분에서 매스미디어는 공신력 있는 정보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해왔고 휴대폰과 같은 통신매체는 사적인 소통을 지원하는 매체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와 대인미디어 사이의 이분법적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는 서로 다른 네트워킹 기술의 만남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중앙집중형의 네크워크를 가지고 있고, 대인적이고 사적인 매체인 전화는 기본적으로 폐쇄형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소셜화를 추동하고 있는 SNS는 비계층적이고 네트워크간의 상호접속이 가능한 리좀(Rhyzome)의 네트워크(Deleuze & Guattari, 1980/2001)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경우 특정한 노드가 정보의 흐름을 관장하기가 어렵고 다양한 특성을 지닌 이질적인 이용자들의 영향력이 증대된다. 따라서 시청 집단의 의미와 위상 역시 새롭게 규정되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매스미디어 이전 시대의 수용자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공통적이고 순간적인 경험을 공유하였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수용자들은 더 이상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묶이지 않고, 그 대신 익명의 다수로 전락하였다. 최근 SNS의 확산은 하나의 공간에서 공통적이고 순간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에 참여했던 매스미디어 이전 시대의 수용경험과 유사한 의사-공동(pseudo-communal)의 수용 형태를 낳고 있다. 특히 뷰어태리어트라 이름 붙여진 비엘리트(non-elite) 시청 집단의 부상은 익명의 영향력 없는 존재로 간주되어온 대중 시청자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요구함과 동시에 앞으로 다양한 연구 주제를 생산해 내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 Anstead, N., & O’Loughlin, B., 2011,‘ The emerging viewertariat and BBC Question Time: Television debate and real-time commenting onlin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Press/Politics, 16(4), 1-23.
- Deleuze, G., & Guattari, F(김재인 역), 2001, <천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서울: 새물결.
- Flusser, V., 1996, Kommunikologie김성재 역), 2001, <코무니콜로기: 코드를 통해 본 커뮤니케이션의 역사와 이론 및 철학>,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 Putnam, R., 1995, ‘Bowling alone: America’s declining social capital, Journal of Democracy’,6, 65-78.
- Shirky, C(이충호 역), 2010, <많아지면 달라진다:‘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 서울: 갤리온.
- Tichi, C., 1991, <Electronic hearth: Creating an American television cultu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 허윤철(신문방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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