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지루했다. 시험을 위해 시를 난도질하는 시간은 더욱 따분했다. 은유가 어떻고 공감각이 어떻고 밑줄 그어가며 여백에다 시 구절 보다 더 난해한 설명들을 받아적을 땐 진작에 포기해버린 독일어 시간 같았다. 이래저래 독해 불가한 건 마찬가지였다. 시인이란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대체가 쓸데없을 미적분 공식 같은 걸 만들어 괴롭히는 수학자와 동류의 족속들 정도로 정리하고 아듀해버렸다. 그렇듯 열등생의 태도로 일관하다가 우연히 그의 시를 만났다. 교과서에서 만나던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면서 깊은 속뜻을 꽁꽁 싸매고 있는 시들과는 전혀 달랐다. 선명하고 격렬했으며 무엇보다 읽다 보면 마음 한 켠 아릿했다. 시인의 이름은 김남주였다.

지난 2월 13일은 그의 20주기 기일이었다. 기념행사가 열렸고 새로이 전집과 비평서가 발간되기도 했지만 그의 시 세계를‘ 관념’과‘ 도식’에 사로잡힌‘ 격문’이자 한 때 옹호될 수 있었으나 장차 비판받을 수밖에 없을 대중 추수주의의 시편들이라는 얘기는 여전히 들려온다. 요컨대 너무 직설적이고 전투적이어서 언어 예술로서의 품격과 지위를 부여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숱하게 반복되어 온 순수 대 참여, 미학적 보수와 전위 식의 이분 구도에 말을 보태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그들의 고매한 평론은 어쩐지 밑줄 긋고 여백에다 받아적어야 할 것 같아서 지루하고 따분하다.

시란‘ 진혼가’이고‘ 나의 칼 나의 피’이자‘ 사랑의 무기’라고 애초부터 선언해버린 시인에게 그런 공박들은 무용하지 않은가. 가뜩이나 친일과 독재에 부역한 문인들의 지분이 유난한 이 땅의 현대문학사에서 그를 낮춰 보려는 담론들은 설령 아무리 세련되고 정교하다 한들 달갑지가 않다. 아울러 그를, 그의 시 세계를 여전히 기억하고 호명하는 이유는‘ 남민전 전사’의 뜨거운 피 때문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찬 서리/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조선의 마음이여”‘( 옛 마을을 지나며’)같은 시가 그렇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그가 삶과 시로써 내보인‘ 인간의 저항’은 문학의 가치를 물을 때 답할 수 있는 하나의 진경이었다고 믿는다. 십수 년 전, 그의 시를 접하고 어쩌면 살아가는 데 시란 게 조금은 쓸모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던 이유도 그의 시에 선연했던‘ 꽃속에 피’와‘ 피속에 꽃’ 때문이었다.

1895일 동안의 고공농성 끝에 이뤄진 기륭전자의 노사합의가 사측의 회피와 매각으로 간단히 무시되었으며 한진중공업과 유성기업 등도 판결과 약속을 헌신짝 취급하고 있다는 칼럼, 되려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에게 떠안긴 손해배상 청구액이 모두 1251억에 달한다는 기사, 청소노동자들이 8시간 근무 단체협약 규정에도 불구하고 하루 16시간 중노동에 시달렸으며 중소기업의 청년인턴들은 월 100만원을 받으며 야근 시에도 수당이 없다는 뉴스까지 단 하루치 신문에 실렸다. 그리고 이튿날, 세 모녀가 생활고를 비관한 끝에 70만원을 남기고 자살했다. 악랄한 이득에 무감하고 없는 자들의 피울음을 외면하는 자본가와 그 한통속 기름진 권력자에게, 휘황한 복지공약을 내걸어 당선되고도 모조리 축소하고 후퇴시켜버린 위정자들께 꼭 들려드리고 싶은 김남주의 시가 있다“. 아 미치겠다/이 땅에 흔해빠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네 놈의 화이트칼라들을 자본가들을/한 입에 못 씹어먹어 환장하겠다 환장하겠다”‘( 항구의 여자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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