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살관리사>(전망, 2013)라는 재밌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부산의 젊은 작가 배길남 소설가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2011년에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으니, 만 3년 만에 창작집을 세상에 내놓은 셈이다. 그런데 자살관리사라니? 책의 내용보다 제목을 먼저 접한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겠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팍팍해도 스스로 생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작가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삶과 죽음마저도 위탁 관리해야만 하는 불완전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것인가?
아마 이 책을 읽어본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배길남은 무거운 소재나 주제도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소설은 유쾌하며 감동이 있다. 그는 스스로 고급독자라고 칭하는 평론가들의 요구에는 별로 부응할 마음이 없다고 작심한 듯,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흥미로운 것은 배길남의 속도감 넘치는 문체와 스토리 전개가 전혀 가볍지 않으며, 우리 삶의 다양한 이슈와 문제 역시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살관리사>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이 그러하다. 책의 표제작에 해당하는 스릴러 형의 연작소설‘증오 외전’을 비롯하여, 부산의 장소와 유년의 기억을 서사화한‘ 동래부사접왜사도’와‘ 썩은 다리’, 꿈과 환상을 매개하는‘ 램프불 옆 에드워드’, 그리고 도깨비 설화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용하여 당대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감동 있게 서술한‘ 한밤중의 손님’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조우하며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자살관리사라는 이상하고 무서운 직업을 다룬 이야기까지도 명랑한 상상력을 통해 재밌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증오하지 말고 심수창처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증오외전’은 자신의 직업을‘ 킬러’가 아니라‘ 자살관리사’로 명명하는 살인청부업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자살보험에 든 한 남성이 정작 자살관리사를 만났을 때, 죽지 않기 위해 벌이는 갈등과 촌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자는 도망치다 잡혀 오고, 또 생과 사를 건 내기를 거는가 하면, 죽음을 유보하기 위해 대화를 지속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대화이다. 왜냐하면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생을 포기하고자 했던 남성의 자살 선택이 철회되기 때문이다. 자살관리사는 남성과의 대화를 통해 타인의 죽음을 방조하는 킬러(killer)에서 타인의 상처와 죽음 충동을 치유하는 힐러(healer)로 거듭난다.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관리사’가 된 것이다.
소설은 타자와의 공감적 대화를 촉발시키는 서사적 말건넴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의 삶과 만나는 소설가 역시‘ 킬러’와‘ 힐러’의 경계를 횡단하는 자이다. 배길남 작가의 <자살관리사>에는 이야기의 힘을 통해 타자와 교섭하고자 하는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