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문학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지역’은 더 이상 문학에
있어 한계가 아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위 시는 김용택 시인의 시 <섬진강1>이다. 김용택 시인은 많은 작품의 배경을 시인이 살던 섬진강으로 해서 흔히‘ 섬진강 시인’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시뿐만 아니라 소설 등의 문학작품들은 작가에 의해 지역성을 띄게 된다. 박형준 문학평론가는“ 지역문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지역의 고유성·개별성을 띠거나 중심성에 저항하는, 또는 지역 자체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문학이 지역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학 작품에서 지역성을 가장 잘 엿볼 수 있을 때는 작품의 배경이 특정‘ 지역’으로 나타날 때다. 한 예로 김동리의 <역마>가 있는데, 이 작품은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역사성과 지역성을 잘 묶어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 지역작가 요산 김정한 선생의 <사하촌> 또한 마찬가지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사하촌>을“ 사하촌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 전체의 문제를 극명하게 요약하고 폭로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렇다고 문학 작품에 특정 지역이 드러나야만‘ 지역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문체나 작가의 의식 등이 지역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저서 <살인자의 기억법>을 쓸 때 부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가 말한 바로는 부산은‘ 철에 따라 살며 말이 짧고 툭 던지는 한마디도 시와 같이 들리는’ 도시다.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간결하게 압축된 문장들이 사건의 끝을 향해 전진하고, 이 남성적인 문체의 속도가 독자들의 시선을 움켜쥔다”는 말처럼, <살인자의 기억법>에는 작가가 본 부산이라는 지역의 이미지가 투영돼있다.

지역문학을 향한 지원 계속 이어져야

   
▲ 지난달 15일 문예비평지‘오늘의 문예 비평’이 김정한 작가의‘뒷기미나루’ 소설의 무대를 찾아 떠나는 문학기행을 진행했다

이렇듯 문학작품에‘ 지역성’은 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여겨진다. 작가는 자신이 작품을 쓰는 지역에서 영향을 받는다. 박형준 평론가는“ 지역이 작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지방과 중심이라는 괴리감이 주는 이분법적 감각”이라며“ 이 과정에서 작가들이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세상을 보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학 자체가 죽어간다’는 말도 있지만, 오히려 지역문학은 점점 더 그 기세를 끌어올려가고 있다. 이순욱(국어교육) 강사는“ 지금 지역문학은 유례없는 호황기”라며“ 작품이 실리는 매체도 많고, 문인들의 수도 이전보다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많은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이 지역성을 보유한 문학작품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힘을 쏟고있다.

민간단체의 지원사업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산작가회의의 활동이 눈에 띈다. 부산작가회의의 강희철 사무국장은“ 지역문학 활성화를 위해 작가들의 글을 모아 비정기 간행물을 내기도 한다”며 “비평가 포럼을 개최해 문학콘서트 등으로 지역민들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예 비평지‘ 오늘의 문예 비평’(이하 오문비)는 지난달 15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요산문학기행을 열기도 했다. 오문비 박형준 편집위원은“ 지역문학을 시민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청년비평캠프나 신인평론상 등의 새로운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역문학의 산실’이라고 불리는 문학관도 늘어가는 추세다. 정지용 문학관, 요산문학관, 창원마산시립문학관과 같이 문인들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문학관도 있고, 추리문학관이나 한국현대시박물관과 같이 전문도서관 형식의 문학관도 있다. 문학관들은 시의 지원으로 건립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지역의 문인들이 모여 사업회나 문학재단을 발족해 건립한다. 이들 문학관은 지역민들과 밀착해 지역민들에게 문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거나, 작품연구나 작품발굴 사업에 집중한다.

부산에도 3개의 문학관이 있지만, 시의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부산에는 요산문학관, 이주홍문학관, 추리문학관 등의 문학관이 있다. 이 중 지역 문인을 기리는 요산문학관, 이주홍문학관은 모두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중인데, 이들은 재정적 압박이 심하다고 입을 모았다. 요산문학관의 나여경 사무국장은“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며“ 시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11월에 열리는 요산문화축전에 대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문학축제나 도서관 사업 등에만 사용 가능하고 문학관 운영기금으로 운용될 수 없어서 문학관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지역’, 한계를 넘어 더 큰 가능성으로

   
▲ 요산문학관(좌)과 이주홍문학관(우), 부산의 대표적인 두 지역문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들은 각각 남산동과 온천동에 위치하고 있다. 문학관 안에는 문인들의 수많은 저서와 유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두 문학관은 문인들을 기리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시설로써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지역문학은 중앙 문학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역문학계의 구조와 문인들의 태도 등 많은 문제가 얽혀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지역 문인들은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가치를 재발굴 하는 작업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순욱 강사는“ 작가들이 서울의 주요 문단에 편입하려 하기보다는 지역 내에서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상징 자본을 가진 집단들에 맞서 지역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인들이 작품 활동에 주력하지 않고 행사 등의 외부활동에 집중하는 추세도 문제다. 이순욱 강사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름만 알리려고 하면 지역문학계도, 작가 본인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전했다. 그 밖에 소수의 명망 있는 작가를 중심으로 서열화된 권력 구조와, 학계에서 지역문학을 폄하하는 태도 역시 지역문학의 발전을 막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문학이 바라봐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박형준 평론가는“ 이제까지는 지정학적 특수성의 한계에 입각한 지역문학이 대세였다”며“ 이제는 그것을 한계로 보지 말고 하나의 가능성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만해문학상을 받은 조갑상 소설가의 <밤의 눈>을 예로 들었다. 그는“ <밤의 눈>은 지역이 가진 특징을 이용해 역사적·사회적 보편성을 풀어낸 작품”이라며“ 이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지역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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