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20주기, 왜 다시 김남주인가

 

김남주 시인은 1980년대 정신의 주축을 이루는 무척 소중한 시인이다. 1980년대 당대 핵심적인 모순들을 강인하고도 집요한 시적 사유로 진솔하고도 열정적으로 뿜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1974년 문단에 등단하여 20년간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5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94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94년 별세하기까지 그는 오롯이 시인으로 살았다, 아니 오롯이 해방 전사로 살았다“( 시인은 해방 전사와 동의어입니다.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에 시인은 항시 있어야 하고 저 또한 있을 생각입니다”, 1988년 12월 21일 전주 교도소 출감 직후 인터뷰).

나는 혁명시인
나의 노래는 전투에의 나팔소리
전투적인 인간을 나는 찬양한다

나는 민중의 벗
나와 함께 가는 자 그는
무장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굶주림과 추위 사나운 적과 만나야 한다 싸워야 한다

나는 해방전사
내가 아는 것은 다만
하나도 용감 둘도 용감 셋도 용감해야 한다는 것
투쟁 속에서 승리와 패배 속에서 그 속에서
자유의 맛 빵의 맛을 보고 싶다는 것 그뿐이다

「나 자신을 노래한다」

그는『 진혼가』(청사, 1984),『 나의 칼 나의 피』(인동, 1987)『, 조국은 하나다』(남풍, 1988),『 솔직히 말하자』(풀빛, 1989),『 사상의 거처』(창작과비평사, 1991)『, 이 좋은 세상에』(한길사, 1992) 등 여섯 권의 시집과『 사랑의 무기』(창작과비평사, 1989),『학살』(한마당, 1990)『,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 1991),『 저 창살에 햇살이 1·2』(창작과비평사, 1992) 등의 시선집을 남겼다. 이외 산문집과 번역시집도 김남주 시인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들이다. 작고 후 유고시집과 시선집, 번역시집들이 뒤를 이었고, 2000년에는 그의 시에 곡을 붙인 안치환의 헌정앨범「Remember」가 발매되기도 했다. 시와 시론과 삶을 나누지 않은, 진솔하고도 투명한 인생을 살다간 시인, 김남주.

김남주 시인이 내보인 시와 시론과 삶은 자유와 해방, 평등을 구가한다. 가장 기본적인 덕목들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 되는 현실 속“,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억압의 사슬에서 민중이 풀려나는 길이고/ 외적의 압박에서 민족이 해방되는 길이고/노동자와 농민이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그러니 가자 우리 이 길을/ 길은 가야 하고 언젠가는 역사와 더불어 이르러야 할 길/ 아니 가고 우리 어쩌랴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어깨동무하고 가자”「( 길」)는 그의 목소리가 내내 쟁쟁거린다.

노동자와 농민이 또한 전사가
시라는 것을 처음 써보았으면 한다
그것이야 말로 나의 자랑이다

그 무렵 창비에 실린 시를
내가 읽어주면 우리 어머니가 듣고
헤헤 영측없이 우리 사는 꼴이다이
그런 거이 시다냐 참 우습다이 참 재미있다이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언뜻 시와는 무관해 보이는 민중들, 그러나 시가 삶의 노래라면 민중이 시와 무관할 리는 없겠다“. 영측없이 우리 사는 꼴”을 담은 시, 이렇듯 경험을 공유하는 삶의 시는 연대의식과 사랑을 펼치는 데 손색이 없겠다. 이것이 곧 김남주 시인이 시를 통해 펼친 혁명의 한 면모이다. 그가 시를 쓰는 것도 번역을 하는 것도 혁명 투쟁의 일환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개념을 확장하는 상징보다 분명한 의미로 다가가는 시어들이 선명한 현실 인식을 구축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김남주 시인의 시적 삶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부조리한 현실이고 햄릿이 말한‘ 뒤틀린 세월’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가족 삶의 이력도, 고등학교 시절 제도권 교육에 불만을 품고 자퇴를 한 것이며 유신체제에 반대하여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한 사회적 삶의 이력도 부조리한 현실, 뒤틀린 세월이 빚어낸 마음 편치 않은 삶의 내력들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길어 올린 감옥시는 한국문학계에서도 특출한 사료로 꼽힌다. 그의 시적 출발이 감옥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내가 시라는 것을 처음 써보겠다고 작심한 곳이 바로 그곳 이었는데 교도소 당국은 수감자에게 연필 종이 등 필기구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 몇 편을 써서 머릿속에다 담아 놓았다.”라고 회고한 글에서도 확인할 수있는 사정이다. 이러한 감옥 안에서 시인은 아이러니한 상황과 마주한다. 그에게 도리어“ 감옥은 팔과 머리의 긴장이 잠시 쉬었다 가는 휴식처이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독서실이고 정신의 연병장이「( 정치범들」)”었기 때문이다“. 피가 졸아드는 두려움으로 시를 새기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노라.”는 고백은 애잔하게까지 파고든다.

하이네, 브레히트, 네루다, 마야코프스키, 아라공 등과 같은 혁명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번역하면서 자신의 시의 길을 찾은 김남주 시인. 하여 그의 시학의 핵심은 현실의 모방을 넘어 삶을 변화시키는 시어의 구사인 셈이다. 곧, 그에게 시적 담론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감동(感動)의 순간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면서 공유하려 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남주 시가 지니는 현재성을 발견한다. 여기서 지금 20대 그리고 대학생들, 아니 우리 모두가 김남주 시인을 상기시켜야 하는 이유를 맞닥뜨린다. 억압의 주체는 교묘히 은폐되더라도 억압의 구조가 지속되는 한 김남주 시가 의도한 변화에 대한 열망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은 김남주 20주기를 맞는 뜻 깊은 해다. 이미 실천문학사 주최로 김남주 시인 20주기 기념 심포지엄‘ 꽃 속에 피가 흐른다’가 개최되었고, 한국작가회의 주최로 기념 행사‘ 김남주를 생각하는 밤’이 개최되었으며, 창작과 비평사에서『 김남주 시전집』과『 김남주 문학의 세계』를 발간하였다. 그가 별세한 2월 13일을 기점으로 몇 김남주 20주기 행사와 사업이 꾸려진 셈이다. 이후 기대되는 행사와 사업이 뒤를 이을 것이다. 49세의 나이로, 미완성의 삶과 문학을 살다 간 김남주 시인. 그러나 열정적이고도 순수한 그의 의도는 여전히 살아 있고 또 그의 자취들이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 한 언제까지고 그는 현재형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 글의 제목으로 삼은‘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는 그의 영원한 동지인 박광숙과 나눈 옥중서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김남주 시인의 화두는 사랑이었다는 생각. 삶과 현실과 시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한 것은 사랑이었다는 생각.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기 위해 그가 선택한 시적 화두는 사랑이었다는 생각. 그리하여 20주기가 세월의 무게를 얹기 보다는 오히려 현재와 미래의 빛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 부여되는 심리적인 시간이라는 생각.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평생 각박한 투쟁만을 일삼은 것이 아니라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는, 순한 눈으로 상생과 공존의 순리를 희원했던 김남주 시인, 그 삶과 시를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

▲ 문선영(동아대 교양교육원)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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