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현장르포] ②죽은자들의 교훈

   
▲ 사진=박현찬 작가 제공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조선소 아르바이트. 방학이 되면 수 많은 대학생들이 ‘돈’을 위해 조선소로 뛰어들고 있었다. 부대신문이 그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직접 조선소 일자리를 구해, 노동자들과 함께 부닥치고 일했다. ‘야근’, ‘특근’도 마다하지 않는 노동자로 보낸 기자. 안전교육 수칙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온몸엔 멍이 들고, 코에선 쇳가루 나왔던 지난 방학 동안의 기록을 두 차례에 걸쳐 생생하게 전한다.

“안전수칙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바로 죽은 자들의 교훈입니다” 안전교육 시간 강사가 말한 첫마디였다. 기자는 조선소 에서 일하는 동안 이 한마디를 수도없이 되뇌었다.‘ 안전수칙만 지키면 아무 탈 없이 귀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작업 현장 앞에서 산산히 부서졌다.

“예비군 훈련도 아니고, 이게 무슨 교육이고?”

A회사는 매번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규정대로 안전 교육을 하고 있으며, 협력업체에서도 예외 없이 시행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럼에도 한해에 평균 5명이 목숨을 잃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소에 입사하기 위해선 9시간의 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는 하청업체 직원도 예외가 아니다. 기자가 조선소에 입사하기 위해 거제도로 향한 날, 356명이 교육장에 모였다. A회사의 수용 가능한 교육인원은 최대 200명이었다. A회사에서 정년퇴직 후 안전교육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상구(61) 씨는“ 최근 경기가 안 좋아 교육생이 날로 늘고 있다”며“ 많게는 하루에 600명이 교육받으러 온다”고 전했다.

수용 가능 인원을 초과하다 보니 교육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기자가 앉은 곳에선 강사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나이 든 사람들은 졸음을 견디지 못해 눈이 어두워지고,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밝힌다. 강사가 이를 가만히 두는 건 아니다. “졸면 집으로 보낸다, 스마트폰 하면 집으로 보낸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소용없었다. 기자 옆에 앉아있던 정태섭 씨는 교육시간 내내“ 예비군 훈련도 아이고 이게 무슨 교육이고? 무슨 말 하는긴지, 한 개도 몬 알아 물긋다”며 볼멘소리를 냈다.입사 전 교육과는 별개로 소속 업체에서도 8시간의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는 법적으로 규정된 필수 교육시간이다. 출근 첫 날, 계약서와 인적 사항 등 몇 가지 서류를 작성했다. 안전교육은 없었다. 교육 담당 박 과장은“ 지금 각 반장들이 일손 부족하다고 난리”라며“ 교육은 약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누가‘ 교육 받았느냐’고 물으면 8시간 교육받았다고 답해라”고 당부했다. 그리곤 신입들을 트럭에 올려 태웠다.

모든 과정은 신속했다. 1.5톤 트럭은 작업현장으로 향했다. 짐칸에는 65년생 아버지부터 94년생 청년까지 다양했다. 가장 젊은 94년생 청년이‘ 어디 팔려가는 기분이다’라고 말하자 다들 깔깔 웃는다. 바닷바람은 사정없이 뺨을 후려갈긴다. 65년생 아버지는 먼바다만 쳐다본다. 한명 한명 짐칸에서 내린다. 다들‘ 몸조심하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꼭 살아서 보자!’는 농담을 덧붙인다.

스스로 벗어 던진 안전장구

   
▲ 기자가 맡은 일은 배 전체에 사람의 혈관처럼 뻗어있는 케이블을 설치하는 일이다 (사진=박현찬 작가 제공)

“민진씨 내리세요.” 드디어 배치받은 곳에 도착했다. 주위는 건조 중인 선박으로 즐비했다. 아파트 15층 높이, 길이만 250m의 LNG 운반선. 이곳이 바로 기자가 일하게 될 작업현장이다. 마중 나왔던 김은철(31) 씨는 첫 만남에“ 군대는 갔다 왔냐”고 물어왔다.이어서 그는“ 나이 학벌 다 필요없으니 일을 빨리 배우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조언해주며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박 내부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자재는 널브러져 있고, 페인트 냄새는 고약했다. 경사가 50도에 달하는 계단을 차곡차곡 올라갔다. 자칫 잘못하면, 뒤로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다. 두손으로 난간을 부여잡고 드디어 아파트 8층 높이의 작업장에 도착했다. 작업장에는 팔뚝 굵기만 한 케이블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욕설과 고함, 그라인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기자가 하게 될 일은 선박 내부의 전선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케이블은 보통 천장이나 벽면에 자리한다. 때문에 사다리를 이용해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안전 수칙에는 ‘사다리 작업 시 사다리를 고정한 후 작업을 해야만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바쁜 현장에선 이를 지키기란 불가능했다. 여기저기서 “막내! 사다리 가져와”라고 재촉했다. 사다리를 고정할 수 없으면 2인 1조로 작업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한 반에 작업 인원은 겨우 8명.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에 사다리를 부여잡고 있을 여유란 없었다.

사다리 작업은 그나마 안전한 편이다‘. 트레이’ 위에서 이뤄지는 작업은 곡예를 방불케 했다. 케이블이 다니는 통로인 트레이 위에 올라가기 위해선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안전벨트나 안전모를 착용해선 작업할 수 없었다. 결국 맨몸으로 기어 올라가야 했다. 그러던 중 트레이 위에서 작업하던 회사 동료가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트레이가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다. 그는 사고로 갈비뼈가 부러졌다. 주위 사람들은‘ 머리를 다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며 무덤덤하게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코에선 검은 쇳가루에 코피까지 묻어나와

선박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안전벨트 △안전모 △마스크 △보안경 등 총 7가지의 안전장비를 필수로 지참해야 한다. 이중 단 하나라도 없을 시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기자가 일하는 동안 마스크는 한 번도 착용한 적이 없었다. 선박 안 공기가 맑고 깨끗해서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은 마스크를 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케이블을 설치하는 일은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반장이‘ 오가’라는 구령을 하면, 반원들은 케이블을 당긴다‘. 스탑’이라는 구령을 하면, 케이블을 놓는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말소리가 작아져, 의사소통이 힘들어진다. 작업반장은“ 쓸데없이 마스크는 왜 들고 오느냐”며 기자를 나무라기만 할 뿐이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니 미세 먼지와 쇳가루가 고스란히 몸속으로 들어온다. 매일 매일 코에선 검은 쇳가루가 나왔다. 코가 얼얼해지고 귀가 먹먹할 때까지 코를 풀어도 검은 쇳가루는 묻어나왔다. 피도 묻어 나왔다. 하지만 출근길에 마스크는 챙기지 않았다. 마스크를 써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마스크는 일회용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지급한 다른 안전장구도 믿을 수 없었다. 목숨줄과 같은 안전벨트는 해지고 해져 케이블 타이로 엮어져 있었고, 보안경은 먼지가 굳어 앞이 희미했다‘. 과연 안전장구에 목숨을 맡겨도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교환을 요청해도 회사는“ 제고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퇴사한다는 사실 미리 말해줘서 고맙다

새벽같이 출근해 항상 11시가 넘어 귀가하는 삶 속에 노동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됐다. 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맞춰 나갔다. 혹여 지각할까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몸이 피폐해지니, 정신도 피폐해졌다. 휴식을 취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 더이상 일했다간 큰일 날 것만 같았다. 퇴사를 결심했다. 반장에게“ 내일부터 회사에 나오지 못 할 것같다”고 전하니 반장은 묵묵히 기자의 사정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수고했다”는 말을 해줬다. 순간 눈물이 울컥 났다. 고된 현장에서도 격려 대신 타박하던 그가 처음으로 해준 따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퇴사를 위한 과정은 간단했다. 박 과장에게 “더는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말하니“, 필요한 서류 작성하고 집에 빨리 가라”고 매정하게 말했다. 부실했지만 기자의 몸을 보호해 준 안전장구를 반납했다. 꼬질꼬질한 작업복도, 노동자임을 증명할 출입증도 반납했다. 마지막으로 월급명세서를 받아들었다. 방세, 식대, 작업복, 공구비, 건강검진비 다합치니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밤낮 할 것 없이 일했지만, 남는 건 별로 없었다.

그동안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작별 인사는 길지 않았다. 그들은 일에 쫓겨 다시 작업장으로 향해야했다. 기자는 뒤돌아 회사를 나섰다“. 퇴사한다는 사실 미리 말해줘서 고맙다”는 선임자 이만수 씨의 말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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