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논란에도 대학 · 용역 업체는 책임 회피

지난 2004년, 고려대 용역 노동자들이 고용 안정과 근무 시간 연장 중단을 요구한 것을 시작으로 대학 내 용역 노동자 문제 해결 노력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은 용역 계약이 만료되는 매년 겨울 되풀이되고 있다.

*용역 계약: 한 기관이 제3의 업체와 계약을 통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업무를 위임하는 것. 이 때 대학은 원청이 되며 용역 업체는 하청, 용역 업체에 고용되는 노동자는 용역 노동자(하청 노동자)가 된다.

지난 3일, 서울 지역 대학 용역 노동자(청소·경비·미화 등)들이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대회를 열었다. 고려대, 경희대, 연세대 등 14곳의 서울지역 대학 용역 노동자 1,600여 명이 참여해 △시급 인상 △식대 인상 △연 2회 상여금 인상을 요구했다. 고려대 용역 노동자들은 총파업 이후 지금까지 파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5일부터는 경희대 용역 노동자들도 또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대학 용역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지난 2011년 홍익대 용역 노동자 정리 해고 사건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홍익대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려던 업체가 입찰을 포기하자 홍익대에서 근무하던 용역 노동자 170여 명이 무더기 정리해고를 당한 것이다. 홍익대 노동자들은 49일간의 농성 끝에 일자리를 되찾았지만, 용역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열악한 근로 조건은 쉽사리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26일, 민주당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이 국내 54개 대학을 대상으로 2013~2014년 청소용역계약서 사본을 분석한 결과, 대학 용역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 △적은 임금 △인권 및 노동3권 침해에 노출돼 있음이 드러났다.

군림하는 슈퍼‘ 갑’ 대학

3월에 새학기가 시작되는 대학의 특성상, 대부분의 대학은 겨울 동안 청소·경비·미화 용역 업체를 선정해 1년간 계약한다. 이때 용역 노동자들은 기존 용역 업체에 사직서를 내고 대학과 계약한 새로운 용역 업체에 이력서를 내야 한다. 합격 기준도 알 수없고 용역 업체마다 내세우는 근로 조건도 다르기 때문에 용역 노동자들은 매해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강원대, 부경대 등 31개(57.4%) 대학의 용역 계약서에서는, 대학이 요구할 경우‘ 즉시’ 또는‘ 2~3일 이내’에 노동자를 교체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노동자의 교체는 곧 해고를 의미하기 때문에 해당 조항 또한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원청인 대학이 용역 업체의 근로자 채용 및 복무 관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북대, 단국대 등 17개(31.5%) 대학에서는 대학이 직접 용역 노동자의 신원을 조회하고 승인해야만 채용이 가능했다. 대학 측 관리자가 용역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하는 대학도 47곳(87%)이나 됐고, 서울대, 순천대 등 33개(61.1%) 대학은 본 업무 외 학내 행사 및 각종 긴급 동원에 응하도록 돼있었다. 광운대 용역 노동자의 경우 이사장 자택을, 청주대의 경우 대학 용역 노동자가 재단 계열 마트 매장까지 청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원청인 대학이 용역 업체의 일에 관여하거나 용역노동자에게 업무를 직접 지시하는 것은 엄연히 노동법에 저촉되는 불법 행위다. 권혁(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학은 용역 계약을 통해 비용 절감 및 고용 유연화를 기하는 대신, 용역 근로자들에 함부로 지시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노동법에 따라 지시권 행사는 직영 근로자에게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임금
인권 침해·노조 탄압까지

대학은 24시간 개방된 건물이 많아 끊임없이 일손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대학 용역 노동자들은 단순노무 직업 중에서도 노동 강도가 세고, 정규 근무 시간 외 잔업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용역 노동자들의 임금을 법정 최저 시급 내외로 책정하고 있었다. 2014년 최저 시급인 5,210원을 적용했을 때, 법정 최대 근로시간인 주 40 시간을 일해도 임금은 90만 원 남짓이다. 이는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비정규직 근로자 평균임금인 142만 8천원에 미치지 못하며, 보건복지부가 산정한 2014년 2인 가구 최저생계비 102만 7천원조차 충족하지 못한다.

국립대의 경우, 2012년 정부가 발표한‘ 용역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따라 청소·경비·시설물관리 등 단순노무용역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이 아닌 시중 노임단가를 적용해야한다. 시중 노임단가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하는 제조부분 보통 인부 노임 단가를 따르는데, 올해 노임 단가는 시급 7,915원(일급 63,326원) 가량이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국공립대는 조사 대상 41개 대학 중 단 한 곳도 없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지부 김윤수 조직차장은“ 법정 최저 시급이 곧 대학 용역 노동자의 최대 시급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학문과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던 대학은 인권 유린의 공간으로 전락했다. 올해 초, 중앙대에서는‘ 작업 도중 잡담이나 콧노래, 고성을 삼가한다’‘, 사무실 의자 및 소파 등에 앉아 쉬지 않도록 한다’는 등의 인권 침해적 용역 계약서가 논란이 됐다. 단국대, 그리스도대 등에서도 용역 노동자들에게‘ 작업 중 잡담을 금지’하고 있었고, 광운대에서는 여성용역 노동자가 성희롱 당한 사례도 있었다.

헌법 제33조에서 규정한 노동 3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노동 3권은 노동조합이라는 단결체를 조직해 집단적으로 교섭하고, 교섭결렬 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자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진주교대, 한국교원대 등 학교는 용역 노동자의 파업 또는 태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거나 집회 및 시위시 학교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었다.

신라대 고공농성 돌입,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고신대, 동의대 등 부산 지역 대학 용역 노동자들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신라대 용역 노동자들은 이사장실 앞 복도에서 철야 농성을 시작했다. 올해 신라대와 계약한 용역 업체가 △연 2회 연차 휴가폐지 △상여금 삭감 △업무시간 확대 등의 근로조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신라대 용역 노동자들은 학교 측이 지난해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최옥순(엄궁동, 49) 씨는“ 작년에 학교 측에서 새용역 업체가 들어와도 그대로 근로조건과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제 와서 해당 용역 업체랑 알아서 하라고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노조가 해당 근로 조건에 항의하자 용업 업체는 40명의 용역 노동자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이에 지난 28일부터 11명의 해고 용역 노동자들이 사범대 건물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그들은 단체협약 내용이 이행될 때까지 농성을 철회하지 않을 계획이지만, 신라대와 용역 업체 측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갈등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서울 지역 대학 용역 노동자들의 경우, 2011년부터 14개의 대학이 용역 업체와 집단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각 대학 용역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교섭을 벌이는 경우에는 대학과 용역 업체 앞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 지역은 이런 네트워크 조차 없는 실정이라 용역 노동자들은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간접 고용’…학생 힘도 필요해

대학 용역 노동자 문제는 간접 고용 형태의 계약 방식에서 기인한다. 대학은 저렴한 돈으로 노동자를 부리고 용역 업체는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이익을 얻는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필요한 모든 희생은 노동자들이 감당한다. 이 때문에 대학이 용역 계약을 법적규제의 회피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부산지역일반노조 이국석 위원장은“ 대학이 굳이 용역 계약을 진행하는 것은 노동자의 희생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비난과 책임은 모두 용역 업체에 떠넘기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며“ 부산대처럼 학교가 직접 고용을 실시하지 않는 이상, 대학 용역 노동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용역 노동자 문제 해결의 좋은 사례로 우리학교를 꼽았다. 2004년 용역 노동자 해고와 노조 탄압으로 논란이 됐던 우리학교는 2009년 1월부터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다. 부산 지역에서 청소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학은 우리학교가 유일하다. 본부와 노조는 매년 임금 협상을 실시하며 2년마다 근로 조건을 협상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총무과 전정술 씨는“ 임금 협상 결과에 따라 매년 차이가 있지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총 비용은 비슷하다”며“ 용역 입찰 시스템에 수수료도 납부하지 않아도 되고 청소 관리도 직접적으로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고용 안정과 적정 시급을 보장 받고 있는 노동자들도 만족하고 있다. 우리학교 청소 노동자 ㄱ(장전동, 67) 씨는“ 용역 업체가 중간에서 가져가는 이윤만큼 우리 임금을 깍지 않아도 되고,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용역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관심도 요구된다. 권혁 교수는“ 용역 노동자 또한 대학 내 생산 공동체이자 대학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2004년 우리학교 용역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 해결에도, 2012년 충남대 용역 노동자 파업 사태 해결에도 학생들의 힘이 컸다.일반노조부산대지부 조명희 사무국장은“2004년 당시 학생들이 서명 운동도 하고 전면에 나서서 많이 도와줘서,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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