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9년 지어진 단관극장 ‘삼성극장’은 50년간 범일동 영화관 거리를 지키고 있다. 오는 16일까지 이곳에서 3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사라져가는 마지막 남은 극장을 추억하는 독립예술문화제 ‘극장전’을 연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부산의 단관극장
  부산에는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범일동과 광복동에 단관영화관이 모여 ‘영화의 거리’를 형성했다. 손으로 그린 영화간판이 걸린 극장 앞에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900여석의 좌석이 모자랄 때도 있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도심의 기능이 서면과 해운대 등지로 이전하면서 단관극장에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어렵게 지켜나가던 극장은 결국 경제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하거나 패스트푸드 식당 등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삼성극장은 재개봉관에서 성인영화 동시상영관으로 바뀌었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기업들이 영화 배급 사업에 뛰어들면서 멀티플렉스 체인점이 대부분의 영화시장을 장악했다. 부산의 대표극장이었던 부산극장을 비롯한 많은 수의 극장들은 멀티플렉스 체인 밑으로 편입됐다.
 

흉물이 된 외로운 극장에 새 숨결을
  근처 주민들도 외면하던 삼성극장이 오랜만에 활기를 찾았다. 극장 안 벽면에는 성인영화 포스터와 함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렸다. 솜이 터져 나온 의자가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는 상영관 안에는 김희진 감독의 ‘범일동 블루스’가 대형스크린에 비춰진다. 복도에는 먼지에 뒤덮인 필름 박스들이 쌓여 있고 옥상에는 버려진 소파와 쓰레기들로 가득하지만 작가들은 세월의 흔적들을 치우지 않는다. 이 안에 담긴 공간의 기억들을 유지하면서 미술작품과 영상을 통해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부산의 기억이 담긴 공간이 사라져가는 아쉬움을 작품으로 나타낸다. 전시회를 기획한 이은호 독립큐레이터는 “도시는 계속해서 변화하는데 공간에 대한 해석 없이 자본주의에 따라 개발만 하는 것이 아쉽다”며 “전시회를 통해 단관극장을 모르는 대학생들도 예전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에는 뿌리를 드러낸 나무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이 작품을 기획한 성백 작가는 “나무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뿌리에서 자라는 것처럼 옛날 극장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화려한 멀티플렉스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룹 ‘날’과 함께 작업에 참여한 김성주(미술 2) 씨는 “이번 전시회가 아니었다면 이곳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며 “영화도시 부산이 옛날 극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고 말했다. 


허물어질 그날의 기억
 삼성극장은 범일동 도로 확장공사를 위해 철거 대상으로 예정됐다. 구헌주 작가는 건물 외벽에 ‘포크레인의 접근을 금지한다’고 말하는 그래피티를 그렸다. 연애시절, 이곳에서 자주 영화를 즐겨봤다는 김기형(좌천동, 52) 씨와 손미자(49) 씨는 작품들을 돌아보며 “젊은 시절의 기억이 허물어지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