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겨레신문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그럼 그들은 산탄을 쏴서 물고기를 잡는다는 말씀이십니까?”

한창 취재 중인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첫마디다. 그의 질문들은 대게 사람을 향하지만, 곧잘 동식물이나 땅, 하늘, 바람, 그리고 숲을 향하기도 한다. 30여 년째 직접 뛰어다니며 환경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조홍섭 기자에게 취재 분야에서의 경계란 없다. 인터뷰는 각종 식물이 자리 잡고 있는 한겨레 신문사 옥상에서 진행됐다. 자연을 탐구하는 그에게 참 어울리는 장소였다. 그에게 기자로서의 삶과 과학언론에 대해 물었다.

 

<약력>

1957년 2월 4일 서울시 출생
1982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과학 담당 간사
1985년 과학동아 기자
1988년 한겨레신문 기자
황소개구리 사건, 새만금 사업 추적 등 특종 생산
2005년 한겨레신문 편집국 기획담당 부국장
제7회 교보생명환경문화상 대상
2011년 웹진‘ 조홍섭 기자의 물바람숲’ 운영

△환경전문기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우선, ‘전문’기자라는 단어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마치 전문기자와 비전문기자가 각각 있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는데, 사실 대형 언론사의 모든 기자가 전문기자다. 전문기자는 기자, 국장, 사장의 순서를 거치는 진급하는 기자가 아니라, 단지 기자로서의 경력만 쌓는 기자를 지칭한다. ‘전문’에 방점이 찍힌다기보다 ‘기자’에 방점이 찍힌다고 보면 된다. 결론적으로 일반적인 기자고, 담당하는 분야가 환경, 생태, 과학 등일 뿐이다.

△환경은 어떤 분야라고 정의할 수 있나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일반인들이 환경이라고 느끼는 것을 담당해 취재하고 있다. 환경 문제는 다양할 뿐 아니라 매우 자주 바뀐다. 80년대 가장 큰 문제는 공해문제였다. 대기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자주 강의를 했는데, 당시 부산은 전국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90년대 초반에는 수질 오염, 쓰레기 매립장 문제가, 후반에는 자연 생태계 파괴 문제가 대두했다. 동물복지 문제, 지역개발 문제 등도 새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80년대 공해 문제가 재연되고 있다.

△과거의 환경문제와 지금의 환경문제는 어떤 차이가 있나

1970~1980년대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투쟁, 싸움, 인권적 차원의 환경문제가 다수였다. 80년대 이후에는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져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90년대 이후 세계적인 차원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안에 과거에 나타났던 환경문제가 모두 포함돼있다. 대표적인 예가 공해문제인데, 과거에는 어느 지역에 한정돼있었다면 이제는 범위가 세계적 차원으로 넓어진 셈이다. 환경문제는 그때그때 다른 모습을 나타내지만,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자꾸 변주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환경운동을 택했던 ‘학생운동가’

》조홍섭 기자의 아버지는 생물교육을 전공한 과학도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직업군인이 된 아버지를 따라 비무장지대와 강원도 산골을 오가며 생명체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기술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공과대학에 진학했지만, 학생운동에 빠지면서 자신의 진정한 관심분야를 깨닫게 된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나에게 학생운동은 투쟁이었다기보다 ‘공대생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였다. 해답을 환경문제에서 찾았고, 특히 공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77년부터 직접 공단지역을 돌아다녔다. 공단에서 피해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하고, 각종 폐수나 폐기물 사진을 찍었다. 이것이 직접 발로 뛰며 조사했던 첫 번째 환경문제인 것 같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부터 기자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유네스코에서 과학 담당 간사 일을 했고, 우연히 과학동아 창간 소식을 듣고 기자로 지원했다. 그 후 기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당시 환경이나 과학에 대해 설명해주는 ‘해설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문 연구자들은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쉽게 해설해주지 못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악용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약자를 억압하고 감시하는 비민주적인 사회로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과학기술의 오남용을 비판하고 실태를 이야기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해설자와 감시자의 기능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환경전문기자가 된 이유다.

》1988년 한겨레 신문사에 입사한 그는 최초로 만들어진 ‘생활환경부’의 환경 분야를 담당하며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황소개구리와 블루길 등 외래종 도입이 생태계에 미치는 위험성을 최초로 기사화했고, 1999년부터는 새만금 간척 사업을 장기간 추적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조홍섭 기자의 물바람숲’이라는 웹진을 만들어 환경과 생태 분야에서 창구를 열어서 필진들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20여 년의 기자 생활 동안 그가 지키고 있는 철칙은 ‘믿을 수 있는 저널’을 만드는 것이다.

△기존 언론의 과학기사나 환경보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기존 언론은 해외토픽의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경향이 심하다. 정말‘믿을 수 없게’쓰는 것이다. 기사는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과학 기사는 조사 과정이 중요하다. 철저한 동료 평가를 거친 논문을 선정하고, 논문 저자와의 인터뷰까지 마친 후 기사를 써야 한다. 그러한 과정 없이 이미 많이 가공된 외국 신문 귀퉁이의 기사를 다시 가공하는 방식의 기사 작성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관점’으로 쓴 기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연을 매우 원초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뀌면 식물을 채집하고, 관광 장소가 되는 등 이용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신기한 존재다. 끝없이 관찰하고, 궁금증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은 과학 기술을, 우리 삶을 향상하는 데 이용할 수단으로만 본다. 과학은 수단이라기보다 합리적인 정신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이 독재자와 권력층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되지 실제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민중을 위한 과학은 없나’, 이것이 젊은 시절 가장 많이 고민했던 주제였다.

△저서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에서 생태계 외래종 문제에‘정치학’이 포함돼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자연과 환경이 정치·사회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황소개구리 기사가 난 후 황소개구리를 퇴치하기 위해 정부는 요리 개발, 퇴치 발명품 대회 개최 등 많은 일을 벌였다. 그러나 단 하나, 생태계에서 황소개구리의 위치와 다른 생물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만은 진행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내기 급급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황소개구리를 퇴치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당시 환경부서가 경제부 등 개발부서에 밀려 지원 부족에 시달린 것에 대한 속죄양으로 황소개구리를 때려잡은 것이 아닌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1999년부터 조사해 온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다

새만금 산업은 역사상 가장 길이 기억될 환경 파괴 사례일 것이다. 이는 생태 파괴라는 결과가 초래될 것을 알면서 시행한 가장 이례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새만금 지역에는 맨손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3만 명 이상 있었다.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새만금은 그들에게 해방의 공간이었고, 지속 가능한 생태 공간이었다. 이제 그들의 삶은 망가져 버렸다.

아직 우리는 편리함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 기후 변화로 인해 홍수가 일어났을 때 갯벌이 홍수를 막는 힘과 제방이 막는 힘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이후 자연재해, 해수면 상승 등 닥쳐올 일은 우리가 함께 치러야 할 파괴의 결과물이다.

30년째‘행복한 병’에 걸린 남자

》그는 왜 이렇게 끊임없이 환경과 자연에 귀를 기울이는 걸까.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니 “그렇지 않아도 동료들이 나를 ‘중증 워커홀릭에 걸렸다’고 말한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 정말 재밌으니까 합니다”

△지역을 이동하며 취재하는 경우가 잦을 것 같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지치진 않나

정말 많이 다녔고, 다니고 있다. 환경기자는 기본적으로 땅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에 대해 알고, 그 땅에 사는 동식물과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한 조사를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 나에겐 즐거움 그 자체다. 실제로 환경기자 생활을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어찌보면 정말 행복한 워커홀릭이다. 정년 후에도 글을 쓰고, 책을 쓰고, 환경을 쫓을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기사는 무엇인가

‘훌륭한 기자는 어떤 기사를 쓰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맞겠다. 우선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 정확하게 쓰려면 굉장히 확인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환경기자의 경우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해야 한다. 자료만으로 정확한 기사를 쓰긴 어렵다. 다음으로, 쉽게 써야 한다. 이는 말처럼 쉽지 않은데, 쉽게 쓰려면 잘 알아야 한다. 완전히 알지 못하면 쉽게 써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는 빨리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이 세 가지가 잘 안 된다. 기자 생활을 처음으로 할 때나 20년이 지난 지금이나 내일 무슨 기사를 어떻게 쓸지 막막한 것은 똑같다(웃음).

△부대신문 공식질문이다. 당신의 20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의 20대는 도전적이고 공격적이었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고 도전하는 것은 젊은 사람의 특권이다. 1970년 당시 아무도 환경·공해문제에 관심이 없었지만 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전했다. 당시 학과 선배가 큰 화학 공장에 근무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리할 정도로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 20대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지만,결코 과거 상황이 지금보다 나았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 겁먹지 말았으면 한다.

조홍섭 기자의 메일 아이디는 ‘ecothink’다. 언제나‘생태학적인 상상력을 갖자’는 의미다. 그의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제안하는 환경보호 방법은 ‘출·퇴근을 걸어서 하자’는 것. 너무 멀어서 불가능하다면, 출·퇴근길의 한 부분이라도 정해서 걷자는 것이다.‘걷기 좋은 길’을 걷는 것이 습관이 되면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질 것”이라고 말하는 조홍섭 기자는, 오늘도 한 시간가량의 출근길을 걸으며 숨어있는 자연의 이야기를 찾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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