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과 묵시의 비판적 상상력을“ 불세출의 그리스도”라는 시어로,“ 불길과 같은 바람[焰の樣な風]”이라는 형상으로 표현했던 작가 이상(李箱). 그런 표현을 선명한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이상의‘ 동시대인’ 파울 클레(Paul Klee)가 그린 <불의 폭풍Feuerwind>(유화, 수채, 432×302mm, 1923) 이다. 타락한 권력의 폐부를 난자하는 천사의 쏘아진 작살(扠), 작살들. 예리하게 날선 채로 틈입하는 화살표들의 돌발과 파열의 순간, 순간들. 그것은 그림 속에서처럼 단계적 계단을 타고 오르는 진보의 구조물을 깡그리 불태우는 신의 방화를, 신풍(神風)이라는 최종적 파국의 도래를 표현하는 화염의 사건, 사건적 화염이다. 그 불길이란‘ 단순한 생명’을 양산하는 사회적 공장을 폐절시키는 힘을 표현한다. 이상/클레의 ‘불의 폭풍’은 보호색 두른 모조-구원의 체제를, 그것을 지탱하는 묵계들을 불태우는 화염의 힘(Gewalt)이다.

▲ 문학평론가 윤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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