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서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만나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신데렐라만을 사랑하는 저 많은‘ 실장님’과‘ 본부장님’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데다 재벌가의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미남이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신데렐라의 고난을 돈으로, 무력으로, 이지적 지성으로, 로맨틱한 감성으로 물리치며 신데렐라의 마음을 끝끝내 얻어낸다. 그들‘ 엄친아’에게 중요한 것은 업무상의 실적을 늘리는 것도, 은행 빚을 갚는 것도, 스펙을 쌓느라 전전긍긍하는 것도, 하다못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아닌,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연애를 시작하는 것 뿐이다.

최근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가 ‘먼치킨 캐릭터의 좌충우돌 연애담’이라 할 만한 한국 인기 드라마의 극단적 지점에 놓이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기 드라마들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판타지’를 그나마 개연성 있게 실현하려 했다면, 이 드라마는 판타지를 그야말로 판타지적으로 그려냈다‘. 1000억 원대의 자산을 가지고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여인만을 사랑해 온 미남’이라는 설정에서 이미 판타지가 되어버린 가운데, 그것도 모자라 불로불사에다 초능력까지 사용하는 주인공이라면 이미 말 다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지구 상에는 없는, 외계인일 수밖에 없다. 이 정도는 되어야 수도꼭지처럼‘ 틀면 무조건 나온다’는 태초부터 아름다운‘ 한류 여신’과 연애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별에서 온 그대>는 한편으로 매우 개연성 있는 서사물이기도 하다. 저 많은 실장님과 본부장님들은 이 땅에 발붙이고 있지만 생활경험 안에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멋진 외계인은 지구 상에 불시착하여 낭만적 사랑의 극점에 이르렀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가 제시한 사랑은 저 흔해 빠진 인간군상들의 경험 가능할 법한 판타지가 아니라 그 누구도 가능하지 않은, 곧 있으면 우주 저편으로 사라질 마지막 판타지이다. 낭만적 사랑이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판타지라면,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남녀의 사랑이란 역설적이게도‘ 개연성 있게’ 낭만적 사랑으로 완벽히 실현될 수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이 불가능하게 된 이른바‘ 3포세대’가 이들의 사랑에 열광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체크카드를 지갑에 꽂고, 알뜰살뜰하게 쿠폰을 챙기며, 그 혹은 그녀가 원하는 것과 내 능력이 미칠수 있는 한계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우리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와주고, 언제 어디서든 내 말을 들어주며, 힘이든 법률이든 의술이든 간에 내게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 해결해주는‘ 별에서 온 그대’와 정확히 반대다.

더욱이 이 드라마는 애초부터 뛰어난 사람이기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일 뿐, 노력한다고 해서 우리가‘ 도민준’이나‘ 천송이’가 될 수는 없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했다. 되레,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이휘경’이나‘ 유세미’를 통해서 적실하게 드러냈다. 신자유주의‘ 노력강권사회’에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 빈축의 대상을 넘어 악(惡)이 되어 버린 지금‘, 노력영웅’의 행적이 추앙되는 여기, 이 드라마의‘ 허무주의’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10년 동안 하루 2시간만 자고 일했던‘ 알바왕 이종렬’ 씨처럼 끝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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